전 세계적으로 비만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체중 감량 산업이 차세대 혁신 분야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전 세계 성인 중 약 6억 7천만 명이 과체중 혹은 비만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전염병 수준이라고 평가했으며, 203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이 비만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만 문제가 가장 심각한 미국의 경우에는 비만 유병률이 전체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월 기준 미국 성인의 비만 유병률은 41.9%로, 1990년대 후반의 30.5%에서 11.4%포인트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증 비만 유병률도 4.7%에서 9.2%로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아동(2~19세 어린이 및 청소년)의 비만 유병률도 19.7%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일라이릴리, 노보노디스크 등의 글로벌 제약회사들은 비만치료제 개발과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 역시 마이크로니들 패치부터 주사제, 경구제 등 다양한 형태의 비만치료제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치열해지는 '비만치료제' 개발 경쟁... 일라이릴리 vs 노보노디스크 vs 화이자 삼파전
비만치료제에 대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경쟁이 점점 가열되고 있다. 비만치료제가 향후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게임체인저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 컨설팅 기관 IQVIA는 2027년까지 의약품 시장 성장을 견인할 주요 질환 치료제 중 하나로 비만치료제를 꼽았으며, 향후 5년간 10%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비만치료제 시장은 덴마크 제약회사 노보노디스크가 주도해왔다. 노보노디스크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다이어트약으로도 잘 알려진 '위고비'를 개발한 곳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제약회사 일라이릴리가 개발 중인 비만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획득하면서 비만치료제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라이릴리(Eli Lilly)

14일 일라이릴리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FDA는 비만·과체중 성인의 만성 체중 관리를 위해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Zepbound, 티르제파티드 성분)를 비만치료제로 승인했다.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FDA의 승인을 받은 제2형 당뇨병 치료제 '마운자로'의 활성 성분인 티르제파티드에 대한 임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해당 성분이 체중 감량에도 효과적임을 발견하고, 티르제파티드를 기반으로 한 비만치료제 '젭바운드'를 개발해냈다.
젭바운드는 주 1회 피하주사(SC)로 투여되는 주사제 형태의 비만치료제로, 활성 성분인 티르제파티드가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수용체(GLP-1·GIP)를 활성화해 식욕과 음식 섭취를 억제시킨다.
임상 3상에서 젭바운드는 위약에 비해 두드러진 체중감소 효과를 나타냈다. 일라이릴리 연구에 따르면 당뇨가 있는 비만·과체중 환자 2,539명을 대상으로 72주간 젭바운드를 투약한 결과, 가장 높은 투입량(15mg)에서는 평균 48파운드(21.8kg)를, 가장 낮은 투입량(5mg)에서는 평균 34파운드(15.4kg)의 감량 효과가 확인됐다. 반면 위약을 투입한 사람들은 7파운드(3.2kg)를 감량했다.
또한 최고 용량의 젭바운드를 투입한 환자 3명 중 1명은 체중의 25% 이상을 감량한 반면, 위약을 투입한 환자의 체중 감소율은 1.5%에 불과했다.
한편, 젭바운드는 올해 말 6개 용량(2.5mg, 5mg, 7.5mg, 10mg, 12.5mg, 15mg)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가격은 한 달 기준 1,059.87달러로 책정됐다. 이는 경쟁제품인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가격(약 1,300달러)보다 20%가량 낮은 수준이다.
추가로 일라이릴리는 경구용 제제인 오포글리프론(1일 1회 경구 복용)에 대한 임상도 진행 중이다. 오포글리프론은 임상 2상에서 36주 복용 시 최대 14.7%의 감량 효과를 보였다.
◆노보노디스크(Novo Nordisk)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는 주사제 형태의 비만치료제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경구용 버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 '리벨루스'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비만 치료를 목표로 리벨루스(14mg)보다 훨씬 높은 용량(25mg, 50mg)의 제품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노보노디스크의 임상 3상 연구에 따르면 제2형 당뇨병이 없는 비만·과체중 성인 667명을 대상으로 68주 동안 대용량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를 복용하게 한 결과, 평균 체중 감소율이 15.1%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위약을 복용한 환자들의 체중 감소율은 2.4%에 그쳤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노보노디스크는 경구용 제제에 대한 승인을 위해 최근 유럽의약품청(EMA)과 미국 FDA에 승인 신청서를 제출했다.
또한 노보노디스크는 비만치료제 생산 시설 확장 등을 위해 420억 크로네(약 5조 395억 원)의 투자도 계획 중이다. 이 투자금의 대부분은 세마글루타이드 성분 주사제인 위고비와 오젬픽(당뇨 치료제) 등의 생산 시설 구축에 쓰일 예정이다.
◆화이자(pfizer)

화이자는 경구용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다누글리프론'에 대한 임상 2b상을 진행 중이다. 제2형 당뇨병 환자 대상으로 진행 중인 임상 2b상 중간 결과에 따르면 다누글리프론을 복용한 그룹은 16주 동안 평균적으로 4.17kg의 체중감소가 나타났다.
화이자는 올해 말까지 임상을 마무리하고 빠르면 2024년 하반기 비만치료제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비만치료제 ①] 국내 제약사들, '붙이는 비만치료제' 마이크로니들 패치 비만치료제 개발에 '집중'

국내 제약업계는 마이크로니들 기술을 활용한 비만치료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대웅제약
14일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이달 초 GLP-1 유사체를 탑재한 마이크로니들 패치 형태의 비만치료제 개발을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회사는 내년 초 임상 1상을 시작으로 2028년 제품을 상용화한다는 목표다.
대웅제약은 이미 임상 1상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로 알려졌다. 앞서 대웅제약은 R&D 전문 계열사 대웅테라퓨틱스의 자체 플랫폼 '클로팜'을 활용해 GLP-1 유사체 '세마글루타이드' 계열 마이크로니들 패치에 대한 비임상을 완료하고 데이터를 확보했다.
전승호 대웅제약 대표는 "대웅제약은 지난해 '2030 글로벌 제제 No.1' 비전을 선포하고 신규 투여 경로 기술인 마이크로니들에 집중하고 있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GLP-1 유사체의 패치형 제형 개발로 의료진과 환자의 미충족 수요를 해결할 것"이고 전했다.
#마이크로니들
마이크로니들은 미세바늘이 부착된 1cm² 크기의 초소형 패치로, 팔이나 복부 등에 부착해 사용한다. 이 기술은 통증이 적고 흡수가 빠르며, 현재 의약품과 화장품 등의 분야에서 폭넓게 개발되고 있다. 기존의 주사나 경구제 형태의 비만치료제에 비해 사용자의 편의성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웅제약이 개발 중인 마이크로니들 패치 비만치료제는 팔·복부 등 각질층이 얇은 부위에 주 1회 부착하는 방식이다. 몸에 부착된 패치는 미세혈관을 통해 GLP-1 유사체를 전달해 체내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포만감을 유발해 식욕을 억제한다.
마이크로니들 패치는 기존 주사제와 동일한 약효를 갖고 있으며, 신경세포를 건들지 않아 통증이 없는 것이 장점이다. 또한 상온 보관이 가능해 주사제와 달리 유통 과정에서 콜드체인 시스템(저온유통체계)도 필요 없다.
다만, 환자가 직접 주사를 투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상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약효가 떨어지기도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약물 전달 시스템으로서의 전 세계 마이크로니들 시장 규모는 2018년 5억 7,900만 달러에서 연평균 6.3%씩 성장해 2030년에는 12억 39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원제약
대원제약은 라파스와 공동으로 마이크로니들 패치 비만치료제 'DW-1022'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개발 프로젝트는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의 바이오산업 핵심기술 개발 사업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지난 7월 양사는 합성 세마글루타이드를 탑재한 마이크로니들 패치 공동 특허 등록을 마치고, 8월 식약처에 임상 1상 시험계획(IND)을 제출했다.
양사는 임상을 통해 노보노디스크의 주사제 형태의 비만치료제 '위고비'를 마이크로니들 형태로 변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원제약 관계자는 "당뇨나 비만 등 장기간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의 경우 복약편의성이 중요하다"라며 "기존 주사제에 비해 인체 흡수성과 편의성을 증대시킬 혁신적인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광동제약
광동제약은 지난해 4월 의료용 마이크로니들 플랫폼 기업 쿼드메디슨과 비만치료제 공동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쿼드메디슨은 '다가 코팅형 마이크로니들'과 '즉각 분리형 마이크로니들' 등의 마이크로니들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해당 MOU를 통해 광동제약은 쿼드메디슨 측에 20억 원을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사업화에 대한 독점 선택권을 획득했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쿼드메디슨과의 협력을 통해 비만치료제 포트폴리오를 한층 다각화할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폭넓은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신약후보물질과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확보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비만치료제 ②] 주사제·경구제 비만치료제 상용화 길도 열려

마이크로니들 패치 형태의 비만치료제뿐 아니라 주사제와 경구제 등의 GLP-1 계열 비만치료제 개발도 이어지고 있다.
◆한미약품
특히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한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 3상을 추진, 이를 기반으로 3년 내 국내 상용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한 비만치료제 약물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 3상 계획에 대한 식약처의 승인을 획득했다"라며 "에페글레나타이드의 혁신적 잠재력이 글로벌 대규모 임상을 통해 이미 확인된 만큼, 3년 내 국내에서 상용화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게 임상 개발을 진행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미약품의 독자적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주 1회 제형 GLP-1 제제로, 체내에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식욕억제를 돕는다. 이 약물은 이미 지난 2015년 파트너사였던 사노피가 진행한 다수의 글로벌 임상에서 체중감소와 혈당 조절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일동제약
일동제약은 지난 9월 식약처로부터 GLP-1 수용체 작용제 기전의 신약 후보물질 'ID110521156'의 1상 시험계획을 승인받았다.
일동제약은 임상 1상을 통해 해당 후보물질에 대한 내약성 및 안전성, 약동학적 특성 등을 평가하고, 임상 개발 등 상용화 작업을 거쳐 향후 제2형 당뇨병, 비만 등을 목표로 하는 경구용 신약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이미 질환 동물모델을 이용해 ID110521156의 효능평가 및 독성 평가에서 인슐린 분비 및 혈당 조절과 관련한 유효성은 물론, 동일 계열의 경쟁 약물 대비 우수한 안전성 등을 확인했다"라면서 "상업화 추진 및 권리 확보 차원에서 한국,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 시장국에 대한 특허 등록 및 출원도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