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둔화와 고금리 등의 여파로 얼어붙었던 국내 벤처투자 실적이 올해 3분기 반등에 돌입하면서 향후 투자 시장 흐름에 대한 벤처투자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경기 동향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민간부문 벤처투자는 이미 3분기부터 출자액이 늘며 경기 선행적 투자가 시작됐다. 특히 금융기관과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2차전지와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딥테크 분야의 투자가 증가하면서 투자 업종 전환도 함께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와 일부 벤처캐피털은 경기 선행적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벤처투자 실적이 충분히 연착륙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반면, 정작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들 사이에서는 내년에도 투자 여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벤처투자 '기지개'… 올해 3분기 투자실적 24% 반등

13일 발표된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2023년 3분기 국내 벤처투자 및 펀드결성 동향'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벤처투자 실적은 3.2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6조 원)보다 2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3분기까지 누적 벤처투자 실적은 7.7조 원으로 유동성이 크게 확대됐던 전년 동기(10.2조 원)에는 못 미쳤지만, 2018년(7.6조 원)과 2019년(7.5조 원) 실적은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 편중 또한 해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2023년 3분기 기준 2차전지·디스플레이·반도체 등 딥테크 및 국가첨단전략산업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업종인 전기·기계·장비 및 ICT제조 투자 비중은 전년 대비 각각 30.2%, 34.1% 늘었다. 반면 유통·서비스(-53.1%), 게임(-50.4%), ICT서비스(-48%) 업종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특히 2023년 3분기까지의 벤처펀드 누적결성액은 8.4조 원으로, 이미 2019년 연간 실적(7.9조 원)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통상적인 벤처펀드가 4분기에 가장 활발하게 결성되는 점, 모태펀드 1차 정시 출자사업에서 선정된 조합들의 결성이 4분기 중 완료될 예정인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연말까지 2020년 연간 실적(10조 원)을 상회할 수 있을 것으로 중기부는 내다봤다.
올해 3분기까지의 벤처펀드 현황을 살펴보면, 출자액은 8.4조 원으로 전년 동기(12.7조 원) 대비 낮은 수치를 보였으나 2019년(5.1조 원)과 2020년(4.7조 원) 실적은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 비중은 정책금융이 13.8%, 민간부문이 86.2%다. 특히 민간부문에서도 금융기관(산은 제외)의 투자비중이 34.5%로 일반법인(21.4%), 벤처캐피털(11.8%) 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서학수 더웰스인베스트먼트 대표는 "2000년 이후 주식시장에서 최장 하락기간은 3년, 하락률은 45~75%인 반면 최장 상승기간은 9년에 상승폭은 104~307%로 항상 하락은 짧고 상승은 길었다"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이제 다시 투자를 할 타이밍이라는 공감대가 벤처캐피털 사이에서 확대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부 또한 투자심리 회복 가속화를 위해 범부처 차원의 방안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 대책에 따라 은행의 벤처펀드 출자한도를 상향하고 민간 벤처모펀드 출자 관련 법인세액 공제 신설, 스타트업코리아펀드 조성, 민간 벤처모펀드 결성지원, 모태펀드 증액 등 다각도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영 중기부 장관은 "올해 3분기 벤처투자 실적은 시장이 안정적으로 연착륙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라며 "투자심리 회복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글로벌 CVC와의 협력을 강화해 우리 스타트업의 해외투자 유치를 돕고, 스타트업코리아펀드 및 민간 벤처모펀드와 같은 벤처투자 가용재원을 두텁게 마련하는 등 필요한 정책수단을 총동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벤처투자 활기에도 창업자 10명 중 6명 "투자 유치 어려워"

벤처투자가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창업자들은 올해 스타트업 생태계 분위기를 100점 만점에 40점대로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발표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창업자 대부분은 투자 시장 위축을 체감하고 있으며 10명 중 6명이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인식과 현실을 파악하고자 9월 5일부터 13일까지 9일간 국내 창업자, 스타트업 재직자, 대기업 재직자, 취업준비생 등 총 9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리포트에 따르면 창업자들은 올해 스타트업 생태계 분위기를 46.5점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대비 7.2점 감소한 수치다. 조사에 참여한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벤처캐피털의 미온적 투자·지원, 민간 부문 지원사업 약화 등에서 시장 상황의 부정적 변화를 체감한다고 답했다. 아울러 경제상황 악화 전망으로 2024년에도 현재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특히 투자 심리가 회복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정부의 벤처투자 지표와 달리, 창업자의 63%가 전년 대비 투자 유치가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더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대한 정부 역할 평가는 52.5점으로, 각종 규제 완화에 대한 요구가 전년 대비 증가했다.
결국 창업자들이 체감하는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전년 대비 위축된 것은 물론, 투자 유치 또한 난항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창업자들은 벤처투자 시장 혹한기에 따른 대비책으로 매출 다각화 전략 마련, 흑자 사업 집중, 비용 절감, 정부 지원사업 추진 등을 고려하는 동시에 약 30%가 해외 시장에 진출하거나 이를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최초 민간 벤처모펀드 출범… '투자 마중물 기대'

지난해 11월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벤처대책인 '역동적 벤처투자 생태계 조상방안' 발표 이후 약 1년 만에 국내 최초로 민간이 중심이 되는 벤처모펀드 시대가 열렸다. 민간 벤처모펀드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벤처투자 시장에서 민간의 역할 강화는 물론, 정부 모태펀드와 함께 민간 자본 유입 또한 확대되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지난 20일 중기부는 서울창업허브 스케일업센터에서 하나금융그룹과 '민간 벤처모펀드 출범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제1호 민간 벤처모펀드의 조성을 알리는 이번 출범식에는 이영 중기부 장관을 비롯해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안선종 하나벤처스 사장, 신상한 한국벤처투자 부대표 및 벤처캐피털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민간 벤처모펀드는 창업·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다수의 벤처 자펀드에 출자하는 재간접펀드를 의미한다. 투자금을 다수의 자펀드에 분산함으로써 리스크 감소 및 안정적인 수익 획득이 가능하고, 자펀드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폭넓게 공유 받아 투자처를 효과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각 분야별 전문성을 가진 벤처투자사와 동반 관계를 형성하여 투자의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민간 벤처모펀드는 지난해 11월 '역동적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방안'을 통해 발표된 이후 올해 3월 벤처투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지난달 19일부터 시행됐다. 제도화 이후 처음 조성되는 펀드에는 하나금융그룹이 나서면서 본격적인 민간 벤처모펀드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하나금융그룹은 총 1,000억 원 규모의 제1호 민간 벤처모펀드를 출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10대 초격차 분야에 중점 출자·투자할 것으로 보이며 관계사인 하나벤처스가 10년간 운용할 계획이다.
중기부 이영 장관은 "민간 벤처모펀드는 장관 취임 이후 벤처기업인의 시각으로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첫 번째 벤처정책으로, 발표 1년 만에 실제 결성까지 이루어져 감격스럽다"라며 "민간 벤처모펀드 1호는 민간 주도 벤처투자 시장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펀드로서 업계의 이정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