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 온라인 플랫폼 업체들의 불공정행위를 집중 규제하기 위한 법안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규제 대상으로는 이른바 '플랫폼 공룡'으로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 구글, 유튜브 등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과도한 규제로 인해 기업의 성장이 가로막힐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정부, 플랫폼법 제정 추진 "독과점 갑질 행위 막는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출처: 공정거래위원회)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지난 19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플랫폼 경쟁촉진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질서 교란 행위를 막고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독과점화된 대형 플랫폼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플랫폼이 경쟁자를 다 없애고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여 독점한 후 가격을 인상하는 행태에 대해 시정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플랫폼 시장 내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정책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독과점 규율개선 TF를 구성했고,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9차례에 걸친 논의를 이어갔다. TF는 독과점 폐해가 빠르게 확산되는 플랫폼 시장으로 인해 현행 규율체계의 보완이 필요하며, 최종 추진 방향은 정부의 입법정책적 판단을 통해 결정하기로 입장을 모았다.

먼저, 시장을 좌우하는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하고 자사 우대나 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과 같은 시장 지배력 남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는 매출액과 이용자 수, 시장점유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해질 예정이며 그 외 시장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반칙행위들을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그동안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해 왔지만,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화 속도가 너무 빨라 제때 대응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번 법 제정 추진을 통해 플랫폼 시장에서의 반칙행위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전 예방 효과 제고, 스타트업 등 신규 플랫폼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 활성화로 플랫폼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편, 공정위는 지배적 사업자 지정 전후로 사업자들이 충분히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할 계획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반칙행위를 했음에도 그 행위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그 이외에는 시정명령, 과징금 등을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플랫폼 독점화의 비극, 소비자가 지불하는 값은 어디로?

거대 온라인 플랫폼들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경쟁 플랫폼의 출현을 저지하거나, 불합리한 방식으로 독점 행세를 하는 등 관련된 각종 문제들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택시 호출 애플리케이션(APP) 카카오T의 운영사인 카카오모빌리티는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가맹택시 기사를 우대하는 등 택시업계의 경쟁을 제한했다는 이유로 지난 2월 257억 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받은 바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2019년부터 최근까지 알고리즘을 조작해 승객으로부터 택시 호출이 발생하면 가맹 기사에게 우선 배차하는 방식으로 몰아주거나, 수익성이 낮은 1km 미만의 단거리 배차는 제외, 또는 축소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공정위는 "카카오T 앱은 가맹, 비가맹의 구분 없이 동일 조건으로 택시를 배차해야 하는 일반 호출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가맹택시를 우선 배차한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가맹기사 운임 수익이 상대적으로 높아졌고, 결과적으로 카카오모빌리티의 가맹택시 유입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판단이다.

현재 카카오T는 택시 호출 시장의 약 8~90% 점유율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쟁사의 가맹택시 수는 현저히 감소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택시 가맹 서비스의 다양성이 감소하면서 가맹료 인상, 호출료 인상 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결국 경쟁 상대가 사라진 독점의 굴레 폐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구글은 자신과 거래하는 게임사들이 원스토어에 앱을 출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4월 공정위는 구글이 경쟁 앱마켓인 원스토어에 국내 모바일 게임사들의 게임 출시를 막아 시장의 경쟁을 저해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21억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앱마켓 시장 내 압도적인 점유율을 이용해 플레이스토어 1면 노출, 해외진출 지원 등을 구글 플레이 독점 출시 조건으로 제안하면서 게임사들이 자유롭게 원스토어에 게임을 출시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공정위가 공개한 구글 내부 이메일을 살펴보면 '우리는 원스토어에 있는 게임사들이 새로 게임을 출시할 때 신규 게임에 대해 마케팅 지원을 해주는 대가로 구글 플레이 독점 출시를 요구해야 하고, 그들의 지난 게임들도 원스토어에서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문제 발생 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원스토어에 대한 전술을 정리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는 내용이 오간 것으로 확인됐다. 구글 임원들이 원스토어 내 국내 게임 출시를 막기 위해 전술을 도모한 것이다.

구글은 이러한 행위를 원스토어가 출범한 2016년 6월부터 공정위가 조사를 개시한 2018년 4월까지 지속했다. 이는 넷마블, 넥슨, 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형 게임사뿐 아니라 중소 게임사까지 모바일 게임시장 전체에서 실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후발주자인 원스토어는 정상적으로 신규 게임을 유치하지 못했고, 이는 직접적인 매출 하락의 원인이 됐다. 결국 구글은 앱마켓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고, 원스토어의 경쟁력은 크게 위축됐다.

이러한 플랫폼 시장의 독과점화는 수수료 및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소상공인과 소비자 등 민생 부담을 가중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에 앞으로도 공정위는 시장을 선점한 플랫폼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강화하기 위한 반경쟁적 행위에 대해 국내외 기업 간 차별 없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한발 앞선 EU 디지털시장법, 한국보다 '한 수 위'

공정위의 이번 플랫폼법 제정은 전 세계적으로 그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현재 해외 각국에서도 플랫폼 독과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규제를 내걸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플랫폼법 제정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곳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2022년 3월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 도입에 합의, 2024년 3월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는 일정 규모 이상의 빅테크 기업을 게이트키퍼(Gate Keeper)로 지정해 사이드로딩 허용, 인앱결제 강제 금지, 자사 우대 금지, 상호운용성 확보 등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정하는 법안이다.

게이트키퍼 적용 대상에는 시가총액이 750억 유로 이상이거나 연매출이 75억 유로 이상인 기업 가운데 월간 사용자 4,500만 명 이상인 핵심 플랫폼 서비스 기업이 해당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9월 미국 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중국 바이트댄스를 게이트키퍼로 확정했다.

이들 기업은 자사 서비스를 통해 획득한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사업에 활용하는 것이 금지되며, 기존 자사 앱스토어에서만 앱을 내려받도록 제한한 구글과 애플은 타 앱스토어에도 이를 개방해야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해당 기업들이 DMA를 준수할 수 있도록 약 6개월간 일종의 유예기간을 부여한 후 2024년 3월부터 본격적인 규제에 돌입할 방침이다.

의무 불이행 시 전체 연간 매출액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되며, 반복적인 위반이 확인되면 과징금이 최대 20%까지 상향 조정될 수 있다. 아울러 EU는 조직적 침해로 간주되는 경우 집행위원회가 해당 기업의 사업 부문 일부를 의무적으로 매각하도록 하는 등 보다 강력한 제재도 할 수 있다고 예고했다.

이외에도 일본에서는 2020년 5월 '특정 디지털 플랫폼의 투명성 및 공정성 향상에 관한 법률안'을 가결했으며, 독일에서는 2021년 1월 '경쟁제한방지법' 제정을 통해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 경쟁 행위를 단속하고 있다.

플랫폼법 갑론을박… 기업 성장 저해한다 vs 더 제대로 제재해야

공정위의 이번 플랫폼법 제정을 두고 IT업계에서는 불만이 제기되는 분위기다. 이미 공정거래법이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전규제까지 더해지면 과도한 규제로 인해 기업의 성장이 가로막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글 등 해외 기업에 대한 적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역차별에 대한 우려도 뒤따른다.

지난 18일 디지털경제연합은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 중단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자율규제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음에도 보다 강력한 법안을 추진한다는 것은 국정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내용이며, 이중규제로 인한 과잉제재와 시장위축, 행정낭비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온라인 쇼핑 분야에서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해외 직구 사이트인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가 국내 이용자 수 2위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온라인 플랫폼 사전규제는 국내 기업들의 성장을 원천봉쇄하고 투자 동력을 상실케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미국에서는 자국 산업 보호,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 미래 산업 동력 등을 고려해 플랫폼 관련 법안을 폐기하는 등 해외 주요국의 각기 다른 정책 방향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디지털경제연합 측은 "대한민국은 자국 플랫폼 기업들이 국내 산업과 시장을 지켜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의 해법을 모색해야 하며, 과도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가 국내 디지털 경제의 성장 동력을 잃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힘을 실어주길 정부에 요청하며 플랫폼, 소상공인, 소비자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민간과 함께 만들어 주길 바란다"라고 호소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정부가 플랫폼 독과점 규제에 진정성 있게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19일 공정위의 발표에 대해 '생색내기 독점규제법'이라고 논평했다. 늦게나마 관련법 제정에 나서겠다고 밝힌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공정위가 제시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행위 규제 방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된 20여 개의 법안에 다 담겨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의견제출, 이의제기, 행정소송 등 항변 기회를 보장하고 나아가 독과점과 불공정행위를 하더라도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 금지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플랫폼 기업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것뿐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측은 "21대 국회가 임기종료를 앞둔 상황에서 이미 제출된 법안들을 둔 채 굳이 정부안을 새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시간을 끄는 것을 보면 사실상 이번 국회 내에 해당 법안을 처리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플랫폼 산업에서의 독점력 남용행위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상은 국회의 입법을 가로막고 법안의 규제 정도를 낮추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덧붙여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남용을 규율하고 불공정 행위를 제대로 제재할 때 플랫폼 산업의 혁신은 유지될 수 있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이 진정으로 플랫폼 영역의 독과점 행위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번 국회 내에 독과점 규제법과 공정화법을 처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플랫폼 산업이 기존 산업에 비해 특정 기업의 시장점유율 확대 속도가 매우 빠르고 독과점적 지위가 고착화되면 해소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을 들어 규제 법안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법안의 제정이 단 6개월, 1년만 늦어져도 플랫폼 사업자들의 독과점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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