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와 에너지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HVAC(냉난방공조) 시스템 수요가 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폭염, 한파 등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실내 쾌적 환경 유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다. 특히 온열 질환, 저체온증 등 기온 변화에 따른 건강 위협이 증가하고 주거 공간은 물론 온도·기후 민감 산업 시설 전반에 걸쳐 효율적인 냉난방 시스템 구축이 필수 인프라로 떠오르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도 HVAC 수요와 직결된다. 대규모 데이터 처리와 고성능 연산을 수행하는 AI 데이터센터는 다수의 CPU와 GPU를 사용하는데, 이는 기존 데이터센터 대비 월등히 높은 전력을 소비하고 발열량도 높아 최첨단 HVAC 기술의 도입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HVAC 시스템 시장 규모는 2024년 2,415억 달러로 추산됐으며, 2025년부터 2033년까지 연평균 7.0% 성장해 2033년에는 4,45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도시화에 따른 건설 활동 증가, 에너지 효율적인 건물에 대한 수요 증가가 성장 동인으로 꼽힌다.
#HVAC
HVAC는 Heating(난방), Ventilation(환기), Air Conditioning(공조)의 약자로, 건물 내부의 온열 환경과 공기 질, 습도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주거 공간뿐만 아니라 상업, 산업, 의료 시설 등 모든 현대 건축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추세이며, 건물 내부의 온도·습도 조절을 비롯해 건물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HVAC 기술은 센서, 사물인터넷(IoT), AI 등 첨단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한 자동 최적화,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BEMS)과의 연동, 예측 제어를 통한 에너지 소비 최소화 등이 현대 HVAC 시스템의 주요 특징이다.
국내 HVAC 강자 LG전자, AI 데이터센터 시장 '공략'… 2030년 매출 '20조' 목표

현재 HVAC 기술은 AI 기반의 스마트 제어 시스템, 고효율 열교환기, 지열 및 태양열 등 신재생에너지와 접목돼 고도화되고 있다. 이는 건물 운영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고 탄소 배출량을 감축해 지속 가능한 건축 환경 조성에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HVAC의 선두주자인 LG전자는 AI 시대 도래와 함께 급증하는 HVAC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장 성장률의 두 배에 달하는 '압축 성장'을 이룬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B2B 영역의 핵심 동력인 HVAC 사업 확대를 통해 질적 성장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2030년까지 HVAC 사업 매출 20조 원 달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LG전자는 △액체냉각 솔루션 등 데이터센터향 HVAC 수주 확대 △초대형 냉방기 칠러 데이터센터까지 외연 확장 △연구개발(R&D)-생산-판매-유지보수에 이르는 현지 완결형 밸류체인 구축 △비하드웨어(Non-HW) 분야 매출 비중 20%까지 확대 △순차적 인수를 통한 사업 역량 및 포트폴리오 강화 등을 제시했다.
◆미래 성장 동력 : AI 데이터센터 HVAC 솔루션

LG전자는 AI 시대에 최적화된 HVAC 솔루션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센터향 HVAC 솔루션에 집중하며, 올해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수주를 지난해 대비 3배 이상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LG전자의 AI 데이터센터 HVAC 솔루션은 크게 액체냉각 솔루션과 공기냉각 솔루션으로 구분된다. '액체냉각 솔루션'은 냉각수 분배 장치(CDU)를 활용해 칩을 직접 냉각하는 방식이다. 핵심 부품 기술력인 '코어테크'를 바탕으로 높은 신뢰성을 갖췄으며,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도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것이 강점이다. 가상센서 기술이 적용돼 주요 센서가 고장 나더라도 펌프와 다른 센서 데이터를 활용해 고장난 센서 값을 바로잡아 냉각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작동시키며, 펌프는 고효율 인버터 기술을 적용해 상황에 따라 필요한 만큼 냉각수를 내보낸다. 회사는 LG유플러스와 공동으로 AI 데이터센터 최적화를 위한 CDU 기술 검증을 진행 중이며, 연내 상용화해 내년부터 본격 공급할 계획이다.
'공기냉각 솔루션'은 칠러를 이용해 데이터센터 내부 온도를 낮추는 방식이다. 터보 칠러, 흡수식 칠러(지역난방의 폐열 활용), 스크류 칠러(심야전력을 이용해 물을 얼리는 데 사용)가 한 기계실에 설치돼 물을 차갑게 만든다. 차가워진 물은 배관을 통해 공기조화기(AHU)로 전달되며, 공기를 차갑게 만들어 각 층으로 내보내 대형 건물 전체를 냉난방하도록 설계됐다.
현재 칠러는 AI 분야를 비롯해 클린룸, 발전소, 스마트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요가 지속 증가하고 있으며, LG전자는 2년 내 매출 1조 원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이미 LG전자의 인버터 스크롤 칠러는 미국 내 배터리공장과 국내 화학플랜트 등에 공급됐으며, 올해 5월 기준 누적 매출액 성장률이 약 30%에 달한다.
이재성 LG전자 ES사업본부장 겸 부사장은 "HVAC은 질적 성장을 위한 B2B 영역의 핵심 동력으로 냉난방공조 사업 가속화를 위해 전진하고 있다"며 "AI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시장을 빠르게 선점하기 위해 코어테크 기술과 위닝 R&D 전략으로 액체냉각 솔루션을 연내 상용화하고, 내년부터 본격 공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데이터센터향 냉각 솔루션 수주를 지난해 대비 3배 이상 늘릴 것"이라며 "이를 발판으로 시장보다 2배 빠른 압축성장을 만들어내겠다"라고 덧붙였다.
◆사업 역량 강화 : ES사업본부 출범 및 밸류체인 구축

LG전자는 지난해 말 기존 H&A사업본부에서 분리해 'ES사업본부'를 출범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연구개발(R&D)부터 생산, 판매, 유지보수에 이르는 '현지 완결형 밸류체인'을 구축해 수주 기반의 B2B 사업 환경에 발 빠르게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회사는 현지 기후·주거 환경을 고려한 고효율 HVAC 솔루션으로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덕트형 공조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북미에서는 주택 구조에 적합한 유니터리 제품군을, 유럽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부합한 공기열원 히트펌프를 주력으로 내세운다.
신흥 시장인 글로벌 사우스 지역(아시아, 중남미, 중동아프리카) 공략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축구장 130개 크기의 복합시설을 한 번에 냉방할 수 있는 고효율 칠러를 공급한 데 이어, 올해 4월 싱가포르에 초대형 물류센터에 상업용 시스템 에어컨 '멀티브이 아이'(Multi V i)를 대거 공급했다.
또한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위닝 R&D' 전략의 일환으로 인도 현지에 'HVAC 제품 개발 전담조직'을 신설한다. 국내 창원에만 있던 전담조직을 해외로 확장해 인도와 인근 국가 시장에 최적화된 맞춤형 제품 개발에 공을 들인다는 계획이다. LG전자는 인도 내 에어컨 보급률은 10% 수준에 불과하지만, 빠른 경제성장과 국민 소득 증가가 소비 확대로 이어지면서 에어컨 시장 역시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LG전자는 HVAC 유지보수 시장 확대가 예상됨에 따라 자회사 하이엠솔루텍를 통해 현지 인프라를 구축하고, 초대형 칠러부터 가정용 히트펌프까지 HVAC 유지보수 솔루션도 제공할 방침이다.
이재명 정부, 신규주택 135만 호 공급에 'HVAC 산업' 청신호
이재명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추진 중인 주택 공급 확대 정책도 HVAC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규모 주택 공급이 현실화될 경우 건설 부문의 활성화와 함께 관련 설비 산업인 HVAC 시장의 동반 성장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7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수도권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주태공급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5년간 총 135만 호의 신규주택을 착공하고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연평균 27만 호로, 1기 신도시가 매년 만들어지는 것과 맞먹는 규모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주택공급 확대방안 마련 배경에 대해 "부동산 시장은 2022년 완화된 대출규제가 금리인하 기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등과 맞물리며 올해 초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변동성이 확대됐으나, 새정부 출범 후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 시행을 통해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라며 "그러나 2022년 이후 착공 감소 등으로 서울·수도권의 주택공급 여건이 녹록지 않으며, 주택시장의 근본적 안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공급이 긴요한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HVAC 산업 수혜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다. 주택 건설이 활발해지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위한 환기 및 공조 시스템 등 다양한 HVAC 시스템의 신규 설치 수요가 대폭 증가할 것이라는 점에서다. 또 새로 지어지는 주택들은 에너지 효율성 및 친환경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준수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고효율 냉난방 시스템, 스마트 제어 기능이 탑재된 공조 솔루션,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HVAC 시스템에 대한 수요 증가로 직결된다.
아울러 HVAC 시스템 설치 및 공급 확대는 향후 유지보수, 수리 서비스 시장 확대로 이어지면서 관련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