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에 대한 퇴출을 언급한 이후, 해당 위험군 종목들의 주가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는 대선 정국과 맞물려 저PBR 종목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며, 코스닥 시장에서도 저평가주에 대한 매수세가 뚜렷하게 확대되고 있다. 주요 대선 후보가 상법 개정과 '좀비기업 퇴출'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코스닥 저PBR 종목들은 상장폐지(상폐) 리스크와 함께 단기 급등락을 반복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는 양상이다.
#PBR
PBR(주가순자산비율)은 기업의 순자산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 저평가 지표다. PBR이 1배 미만이면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모두 청산할 때보다 현재 주식가치가 더 낮다는 의미로, 저평가 신호로 해석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3일 기준 코스닥 상장사 1,782개 중 1,484개(83.3%)가 PBR 1배 미만의 저PBR 종목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년 전 대비 62.6%포인트 급증한 수치로, 최근 3년간(5월 기준) 저PBR 종목 비중은 2022년 20.7%, 2023년 27.9%, 2024년 68%로 증가 추세를 보여왔다. 전체 코스닥 지수의 PBR도 2022년 2.08에서 1.6으로 낮아졌다. 저PBR 종목이 급증한 배경에는 경기 침체와 기업 실적 부진, 글로벌 투자심리 위축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저PBR주, 정책 테마 기대에 급등... 상장폐지 리스크 방어 움직임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4월 21일 '저PBR 기업 청산'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이후, 저PBR 종목을 중심으로 주가와 거래량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정책 테마와 연계되거나, 별다른 호재 없이 저평가 매력만으로 주가가 오르는 사례가 잇따랐다.
실제로 4월 21일부터 5월 23일까지 주가 변동을 조사한 결과, 알파녹스는 211%로 가장 높은 주가등락률을 기록했다. 이에 PBR은 0.55에서 2.16까지 급등했으며, 최근 15거래일간 주가가 100% 이상 오르면서 투자경고종목 지정 예고까지 받았다. 23일 한국거래소는 "알파녹스의 주가가 15일 전보다 100% 이상 상승함에 따라, 5월 26일 투자주의종목으로 지정했다"라고 설명했다. 해당 기간 상위 20개 계좌의 매수 관여율도 37.74%에 달하는 등 소수 계좌의 집중 매수 현상도 두드러졌다.
삼륭물산도 150% 이상의 주가상승률을 보이며, PBR 0.72에서 2.03으로 상승했다. 친환경 정책 수혜 기대와 정치권의 환경 공약 발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가 지난달 22일 '탈플라스틱'을 포함한 기후환경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삼륭물산을 비롯한 친환경 포장재 관련주가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같은 기간 대호특수강 주가는 65% 상승해 PBR이 0.33에서 0.73으로 개선됐다. 대호특수강은 전통적인 철강 부품 제조 기업이지만, 최근 인공지능(AI) 산업 성장과 정부의 AI 인프라 확대 정책 수혜 기대가 시장에서 크게 부각됐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AI 및 첨단산업 육성 공약을 내놓으면서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고급 특수강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오늘이엔엠 역시 24.4%의 주가 상승과 함께 PBR이 0.25에서 0.52로 개선됐다. 저평가 매력과 정책 테마, 5G·AI 등 차세대 산업 기대감, 벤처기업부 편입에 따른 성장성 공식 인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오늘이엔엠은 4월 30일 코스닥 중견기업부에서 벤처기업부로 소속이 변경됐으며, 정부의 스마트팩토리·AI·로봇 등 첨단산업 육성 정책과 맞물려 시장 재평가가 이뤄졌다.
이 밖에도 디에스케이, 리드코프, DGP, 엔에프씨 등도 별다른 개별 호재 없이 거래량이 대폭 늘며,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이처럼 정책 테마에 대한 기대감이 최근 저PBR 종목들의 주가 급등을 이끈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단순히 정책 기대감만으로 설명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최근 상장폐지 요건 강화와 저PBR 기업 청산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일부 기업들이 상장폐지 리스크를 의식해 주가 방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대주주나 경영진이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수급 관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또한 일부 종목에서 소수 계좌의 집중 매수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단순한 정책 테마 외에 다른 의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이재명 후보 "상법 개정으로 저PBR 기업 퇴출"... 이준석 후보도 상법 개정 찬성 입장

이재명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상법 개정과 기업지배구조 개선, 저PBR 기업 퇴출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정책 기대감과 불확실성이 동시에 반영되면서 저PBR 종목에 단기 수급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코스피 5000 달성'을 목표로 주주충실 의무 도입 등 상법 개정과 주주환원 강화, 저PBR 기업 청산을 통한 좀비기업 퇴출을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는 PBR 0.1~0.2배 수준의 부실 종목들이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이들 기업의 빠른 청산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지난달 21일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이 후보는 "선진국 대비 지나치게 많은 국내 상장사 수와 낮은 PBR 수준이 시장의 신뢰와 효율성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라며 "PBR이 0.1~0.2 수준에 불과한 상장사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적대적 M&A로 인수해 청산하면 10배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존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주식시장이 제 역할을 하려면 이 같은 구조적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준석 후보는 이번 10대 공약에는 직접 포함하지 않았지만, 상법 개정에 기본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한 이준석 후보의 소속당인 개혁신당은 지난해 1월 상장사 지배구조 개선과 증시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 입법 및 정책 공약을 발표하면서,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와 소액주주 보호를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코스피 5,000·코스닥 2,000 달성을 목표로 내세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