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내년부터 초·중·고등학교에 AI 디지털교과서(AIDT, 이하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교육부는 AI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개인별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는 동시에 교사들의 학습 설계 및 관리 측면에서 용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디지털교과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디지털교과서는 전통적인 종이 교과서를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한 것으로, 컴퓨터, 태블릿, 스마트폰 등의 전자 기기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학습자료를 의미한다. 용어사전, 멀티미디어 자료, 실감형 콘텐츠, 평가문항 등 풍부한 학습자료와 학습 지원·관리 기능이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정부의 디지털교과서 도입안 : 2025년 초·중·고등학교 영어, 수학, 정보 교과에 디지털교과서 76종 도입
정부는 지난해 6월 '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을 마련하고 도입 청사진을 공개했다. 2025년에는 수학, 영어, 정보, 국어(특수교육) 교과에 우선 도입하고, 2028년까지 국어, 사회, 역사, 과학, 기술·가정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후 지난해 11월 말 정부는 교육현장, 전문가 의견과 시도교육청의 정책적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디지털교과서 도입 일정을 일부 조정했다. 초·중·고등학교 기준 영어, 수학, 정보 교과는 기존과 동일하게 2025년부터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고, 국어와 기술·가정(실과) 교과는 디지털교과서 적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또한 사회, 과학 교과에 대해서는 2027년부터 도입을 시작해 2028년 완료하기로 했다.
같은 달 교육부는 내년 도입될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검정심사 결과도 발표했다. 검정심사는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공통교과의 영어, 수학, 정보 교과 총 146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전문가와 현장 교사로 구성된 검정위원의 면밀한 검증을 거쳐 76종이 최종 확정됐다.
12월 초에는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및 늘봄학교·교육기부 박람회를 개최하고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한 미래 교육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히 '디지털교과서와의 첫 만남'을 주제로 전시된 '디지털교과서관'에서 내년부터 사용될 76종의 영어·수학·정보 교과 디지털교과서를 전시하며, 개발사가 직접 주요 기능과 활용 방법을 안내하고 관람객에게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 외에도 정부는 현재 디지털교과서 도입과정에서 교사, 학부모 등 현장의 의견을 지속 청취하고 있으며, 교원의 역량 강화 및 학교의 디지털 기반시설(인프라) 개선 등 교실에서 디지털교과서가 원활히 활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둔 지금은 디지털 기술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잠자는 교실을 깨울 때"라며 "디지털교과서가 처음 도입되면서 교사들에게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교실과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에 힘을 모아주시길 바라며, 교육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전했다.
◆디지털교과서 중심의 과학·수학·정보 교육 종합계획(2025~2029) 발표
최근 교육부는 디지털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과학·수학·정보·융합 교육 종합계획(2025~2029년)을 발표했다. 이번 계획은 '과학·수학·정보 교육 진흥법'에 따라 마련됐으며, 급격한 과학기술 발달과 환경 변화에 대응해 AI 및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핵심 골자로 한다.
세부 과제로는 △모든 학생의 핵심 역량을 키우는 수업 혁신 △인공지능·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학생·교원의 맞춤형 성장 지원 등이 설정됐다. 특히 교육부는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해 학생 스스로 지식을 이해·재발견·재생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수업 모델을 개발·보급하고, 디지털교과서 학습 분석을 통해 개별 맞춤형 프로그램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과학·수학·정보·융합(STEAM) 교육은 인공지능 일상화 등 사회 전반의 큰 변화에 미래세대가 유연하게 대응하고, 첨단 과학기술 사회의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STEAM 교육 종합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해 학생 주도적 맞춤형 학습을 실현하고 평등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라고 강조했다.
[정부 입장] 교육부, 디지털교과서 활용 수업 시연 후 교사·학부모 만족도 상승

16일 교육부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수업 시연을 본 교사와 학부모의 만족도가 참관 전보다 상승했다고 밝혔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진행한 '2024 대한민국 교육혁신 박람회'에서 디지털교과서가 실제 수업에서 활용되는 모습을 확인한 교사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참관 후 만족도 점수가 크게 상승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356명)는 8개 항목에 대한 만족도 점수 평균이 참관 전 3.97점에서 참관 후 4.33점으로, 학부모(176명)는 참관 전 3.53점에서 참관 후 4.23점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실제 디지털교과서를 자세히 살펴본 많은 선생님이 디지털교과서가 실제 수업과 학생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라며 "이번 설문조사는 디지털교과서가 실제 수업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답변한 결과로, 많은 선생님과 학부모가 디지털교과서의 유용성에 동의한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는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수업 설계안 마련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선도교사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교실혁명 선도교사(832명)들은 디지털교과서의 만족도를 묻는 설문조사(5점 척도)에서 평균 4.04점의 높은 점수를 줬다.
세부적인 항목은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한 수준 진단 및 맞춤형 콘텐츠 제공으로 학교에서 개별 맞춤 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4.11점) △디지털교과서로 학생 수준별 학습지 제작, 채점 등에 시간을 아낄 수 있어 교사가 수업을 설계하고 학생의 사회 정서적 성장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돕는다(4.15점) 등으로 구성됐다.
[반대입장] 디지털교과서 학교 재량 사용 개정안 통과에 전교조 "교과서 지위 박탈 대환영"
교육부의 기대와 달리 일부에서는 실효성 논란과 천문학적 예산 낭비 등을 이유로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정부가 2025년부터 도입하려는 디지털교과서를 유보해달라는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의 동의를 얻어 지난 6월 국회 교육위원회에 회부됐다.
이러한 반대 여론을 반영해 이달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용 도서(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디지털교과서를 학교장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같은 날 성명서를 내고 "이번 개정안 통과는 교육부가 전국 모든 학교에 디지털교과서 구매를 강제하려 한 시도를 봉쇄한 결정"이라며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박탈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를 환영한다"라고 발표했다.
전교조는 지난 12월 3일 공개된 디지털교과서 전시본에 대해서도 세계 최초로 AI 기능이 탑재되었다고 선전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 활용하던 e학습터, 에듀넷, 위두랑 등의 학습용 사이트와도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기존 교육용 프로그램을 답습한 기능이 대부분이다"라며 "국회가 본회의에서 조속히 해당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한다"라고 전했다.
◆전교조,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교원 의견 조사 결과 발표 : 98.5% "원활한 사용 불가능"

전교조는 긍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던 교육부의 설문조사와는 정반대되는 조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전교조가 지난 12월 10일부터 16일까지 전국 교사 2,6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현장 교원 의견조사>에 따르면, 응답 교사 중 98.5%가 내년 각급 학교에 도입되는 디지털교과서의 원활한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디지털교과서의 실물 공개가 지연돼 교사 대상 연수가 매우 미흡한 수준으로 이뤄졌고, 실제 사용과 관련된 연수는 전무했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교사들은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한 교육계의 우려에 대부분 동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과도한 디지털 기기 사용에 따른 집중력·시력 저하 및 기기 과의존 문제 94.7% △문해력 저하 94.3% △개인정보 보호 문제 93.7% △학생 맞춤형 수업 아닌 문제풀이식 반복 학습에 따른 수업방식 획일화 93.2% △천문학적 구독료에 따른 예산 낭비와 이에 따른 교육여건 악화 95.0%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