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비대면 진료를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보건복지부의 비대면 진료 법제화 기준에 대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15일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재진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 법제화'에 대해 원격의료 플랫폼 업계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2021년 7월 결성된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닥터나우, 굿닥, 올라케어, 엠디스퀘어, 메라키플레이스 등 원격의료 플랫폼 18개사가 속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단체다. 국내 원격의료 시장의 혁신 및 안착과 향후 건설적인 발전을 도모하고자 만들어졌다.
정부-대한의사협회 "법제화는 긍정적이지만 재진 환자 중심으로 실시돼야"
지난달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제2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비대면 진료 도입에 합의했다. 합의 내용은 의사협회가 제안하는 방안을 바탕으로 ▲대면 진료 원칙 ▲비대면 진료의 보조적 활용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실시 ▲비대면 진료 전담 의료기관은 금지 등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우리나라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의3에 따라 '심각' 단계 이상의 위기경보 발령 시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있는데, 국내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지난 2020년 2월부터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본격적인 비대면 진료가 시작됐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년간 비대면 진료를 통해 1,379만 명의 건강을 보호했다며 그 성과를 바탕으로 '의료법 개정을 통한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이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22년 10월)에서는 87.9%가 향후 비대면 진료를 활용할 의향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으며 높은 만족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이유로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는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에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의약품 오남용, 원격 진료의 부정확성 등을 이유로 초진 환자까지 범위를 넓히는 데에는 반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의 비대면 진료 원칙은 지키되 국회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의료계, 이용자, 플랫폼 업계 등 각계의 다각적인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6월 국회에서 비대면 진료법(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환자의 의료 선택권 제한해서는 안 돼"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재진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는 환자의 의료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청년 스타트업이 대다수인 산업계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라며 초진 환자가 대상에서 제외된 데에 강하게 반발했다. 또 "코로나19 상황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3년간 그 어떤 의료사고도 없었다"라며 오진 우려 등 각종 부작용 문제 제기에 대해 일축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후보자 시절 내세운 공약이다. 이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법제화를 반겼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상황에서 재진 환자 중심의 법안 통과는 산업 전반에 독이 된다는 입장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이대로 제도화되면 관련 기업들 80%가 도산할 것이며 비대면 진료를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과도 거리가 멀다"라고 강조했다. 또 자체 분석 결과 애플리케이션 이용자의 99%는 감기 등 경증으로 급히 진료받을 병·의원을 찾는 초진 환자라고 밝혔다.
장지호 닥터나우 대표는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은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제일이다"라며 "좋은 시스템을 두고 코로나19 이전으로 회귀해서 무엇을 더 검토하고 점검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각종 부작용 등 협의·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애초에 의사협회도 비대면 진료 법제화에 긍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지난해 7월 대한의사협회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도입하거나 합법화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조치라는 입장을 내놨다.
당시 의사협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도입된 비대면 진료는 지금의 플랫폼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라고 말하며 ▲약사법상 광고가 금지된 전문의약품에 대한 광고 범람 ▲의사의 진찰과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을 환자가 직접 선택하도록 유도 ▲불법 의료광고 및 환자유인행위 유도 ▲의료 서비스 및 의약품 오남용 사례 발생 등의 부작용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한 의료관계자는 전화나 화상으로 상담을 할 경우 정확한 진단이 어려울 수 있고 비대면 진료 활성화로 인해 동네병원이 도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비대면 진료를 통해 대형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동네병원에 방문하기보다 대형병원 진료를 받고자 몰릴 수 있으며, 장기화될 경우 정작 필요시 즉각적으로 진료받을 수 있는 동네병원(1차 의료기관)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약사는 '탈모약, 여드름약, 정신과약 집에서 편하게 받으라'는 플랫폼의 광고에 "비대면 진료의 의미가 오남용 우려 약품을 더 편히 받으라는 의미였나"라며 한숨을 지었다. 실제 서울시의사회, 서울시내과의사회, 서울시약사회 등 3개 단체는 지난달 공동성명서를 내고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안전성·유효성 검증이 필요하고, 의료사고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며 약물 오남용 소지가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대한약사회는 "비대면 진료 자체는 의료기관의 영역이지만 상당수의 비대면 플랫폼이 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고 말하며 약 배송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어 무분별한 조제약 배달과 환자 유인 행위가 발생하고 있으며, 제대로 된 복약지도가 어렵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덧붙였다.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의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6월 법안 통과에는 상당한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허용 질환 ▲플랫폼 문제 ▲비대면 진료 제공 방법 ▲약 처방과 배송 ▲비대면 진료 수가 ▲법적 책임소재 ▲개인정보 문제 등 비대면 진료에 대한 논의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해외 원격의료 현황들은?
미국은 1993년 미국 원격의료협회(ATA) 설립과 함께 원격의료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미국 전체 병원의 50% 이상이 참여하고 있으며 코로나19 이후에는 원격의료 활용이 38배나 증가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진료 제한을 완화해 초진 환자에게도 화상진료를 허용하고 이메일이나 문자 의료 상담에도 수가를 지급하고 있다. 미국 내 원격의료 시장의 규모는 2019년 175억 3,000만 달러(약 20조 8,168억 원)에서 연평균 38.2%로 성장해 2025년까지 1,223억 달러(약 173조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내 2002년 설립된 텔라닥(Teladoc)은 1만여 명의 의료진을 보유하고 결막염 등 가벼운 질환부터 암 같은 중증 환자 후속치료, 정신과 상담 등 폭넓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우버 개발자들이 왕진 서비스를 진행, 환자가 있는 장소에 의사가 직접 방문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에서는 이미 관련 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1999년 원격의료 관련 정책을 세우고 2009년 의료인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자유화했다. 2014년 의사와 환자 간 비대면 진료를 허용, 2019년 의약품 온라인 판매 허용, 2021년 국가 장기발전 전략에 원격의료 산업 육성 포함 등의 조치를 통해 원격의료에 대한 규제를 꾸준히 완화하며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현재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의 주요 IT 기업들이 원격의료 시장에 진출해 있다.
일본은 20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원격의료 규제를 완화했다. 1997년 낙도와 산간벽지 주민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해 대면진료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원격진료를 처음 허용했다. 이후 2011년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 허용 지역을 확대, 2015년 8월 원격의료 서비스를 전면 허용했다. 2016년 5월에는 일본우정그룹 산하 택배업체인 일본우편에서 의사 처방약 등 전문의약품 배달도 시작했으며, 2021년 4월부터는 특례로 초진 환자의 온라인 진료까지 허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