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나는 투자 결정의 기준을 이야기하거나, 이미 투자를 감행한 이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두 가지 질문은 결국 하나의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투자는 단순히 현재 보이는 가능성에 베팅하는 행위가 아니다. 글쓴이는 이 책을 통해 투자는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나 열매를 맺을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설계하는 정교한 과정과 같다고 말한다.
'좋은 사업 같아서', 혹은 '매력적인 대표라서' 투자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는 그저 흘러나오는 피상적인 견해일 뿐이다. 냉혹하게 말해 스타트업의 성공률은 극히 낮다. 그렇기에 투자자는 더욱 치열하고 치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수많은 실패의 가능성을 짚어내고, 그 모든 난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복해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투자의 눈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업을 일궈내고,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 탑레벨 액셀러레이터는 어떤 기준으로 스타트업을 바라볼까? 그들이 운영하는 투자 회사는 어떤 철학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투자를 실행하고, 또 그 이후의 성장을 지원할까?

책에서 제시된 글쓴이의 세 가지 원칙 'WHY - HOW - WHAT', 즉 '이 사업을 왜 하는가 -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내 삶의 방식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명확한 이유와 존재의 의미가 먼저 설정되어야 비로소 사명감이 싹트고, 그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도출될 때 비로소 실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이 세 가지 과정을 모두 거쳐야 결실을 맺을지 알 수 있다.
스타트업이라는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 탄생시키고, 그 생명이 걷고 성장하며 마침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여정은 한 사람의 인생과 같다. 갓 태어난 아이가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성장하듯, 스타트업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해 나간다. 이러한 성장의 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가는 투자자, 액셀러레이터는 어떤 마음으로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는 것일까? 그들의 기대와 헌신대로 스타트업은 이상적인 궤도를 따라 성장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에 직면하기도 한다. 마치 사춘기 자녀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 속을 끓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필연적인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스타트업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미래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투자자들의 깊은 통찰과 고민을 전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기업이나 예술 분야처럼 일반적인 스타트업의 잣대로 평가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포용하기 위한 가치 평가 모델은 정말 인상적이다. 투자의 결과를 단순히 재무적인 관점에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고려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단순한 자금 지원을 것을 넘어,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에 공감하고 성장 전략을 함께 고민하며 실행 방향을 제시하는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이들뿐 아니라 투자를 고려하는 개인과 기업 모두에게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