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 공모주의 상장 때마다 논란이 됐던 기관투자자의 이른바 'IPO(기업공개) 뻥튀기 청약'을 막을 대책이 제시됐다.
금융위원회는 26일 열린 제8차 정례 회의에서 IPO 시 상장을 맡은 주관사가 의무적으로 기관투자자의 주금납입능력을 확인한 후 공모주를 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동 개정안은 지난 12월 발표된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 시장 건전성 제고방안」에 대한 후속 조치다.
일반적으로 공모청약 과정에서 주관사는 공모주의 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먼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희망 매수가격, 수량, 의무보유 확약여부 등 수요상황을 파악하는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수요예측에서 결정된 공모가격으로 일반투자자에게 공모주 청약을 받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는 공모주 금액의 절반을 증거금으로 내야 하지만, 기관투자자들은 그럴 의무가 없다. 금융당국이 2007년 5월 개인투자자의 공모청약 증거금은 유지하돼, 기관투자자의 증거금은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IPO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10조 원 규모의 공모청약 물량을 신청한다고 가정했을 때, 일반투자자는 이에 절반인 5조 원을 증거금으로 내야 하는 반면, 기관투자자는 이에 해당하는 납입능력이 없어도 물량 주문이 가능하다.
공모청약 활성화를 목표로 만들어진 방안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기관투자자의 허수성 청약 논란에 불을 지폈다.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기관투자자들이 인기 종목을 1주라도 더 배정받기 위해 본인들의 주금납입능력을 초과하는 물량을 신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 없어도, 과도하게 물량을 주문해도 부담이 없는 환경을 기관투자자들에게 제공한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허수성 청약의 관행을 해소하고자 금번 제도개선에 나섰다.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주관사는 금융투자협회가 정하는 기준에 따라 기관투자자의 주금납입능력을 확인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고 공모주를 배정하는 경우 불건전 영업행위로 과태료 부과 등의 제재조치를 받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허수성 청약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이 4월 중 대부분 완료된다"라며 "하반기 제도개선 사항들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실제 수요에 기반한 공모주 청약과 배정이 이루어지고 IPO 시장이 보다 공정하고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까지 구체적인 주금납입능력 확인 기준을 담은 금융투자협회의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한 뒤, 7월 이후 제출되는 증권신고서부터 개정안을 전면 적용할 계획이다.
IPO 시장의 끊이지 않는 논란 '수요예측·기업가치 뻥튀기'

허수성 청약이 많아지면 투자 시장은 어떻게 될까. 기관투자자들의 막무가내식 물량 주문은 수요예측 경쟁률을 과도하게 높일 수 있고, 이는 곧 공모가가 왜곡되는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실제 해당 기업이 상장했을 때 시장 가격이 공모가보다 낮아지면서 투자자들에게 피해가 몰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IPO는 비상장 혁신기업이 주식시장에 진입하는 첫 관문이자 자본시장의 핵심 기제로써, 공모시장에서 적정가치를 발견해 투자자들이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허수성 청약에 대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최근까지 IPO 뻥튀기 논란이 이어졌다.
지난해 1월 '단군이래 최대 IPO'라 불렸던 LG에너지솔루션의 기관 수요예측에는 1경 5203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주문이 접수됐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납입된 돈이 아닌, 수요예측 참여 기관 대다수가 최대 주문물량을 써낸 결과였다. 당시 기관투자자들 대부분이 1주라도 더 받기 위해 자신들의 납입능력과는 상관없이 최대치의 주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자본금 5억 원, 순자산 1억 원의 기관투자자가 몸집의 16배에 달하는 9조 5천억 원 규모의 물량을 신청하는 일도 벌어졌다. 기관투자자의 증거금 제도가 폐지되지 않았더라면, 순자본금 4조 7500만 원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일이다.
최근에는 뻥튀기 청약에 가담했던 기관투자자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주관사를 상대로 소송전을 예고하는 사건도 있었다. 지난달 한 공모주 투자 전문 운용사는 2차전지 분리막 제조업체 더블유씨피(WCP)를 상장시키는 과정에서 주관사인 KB증권으로부터 허수성 청약을 강요받았고, 과도한 공모주 배정으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KB증권이 공모 물량을 배정하는 주관사의 권한을 악용해 수요예측 일정이 끝난 이후에도 추가 물량을 접수받고 기관투자자들에게 높은 가격에 공모가를 수정해달라고 압박했다"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기관투자자가 최대한 많은 물량을 접수해 청약 흥행을 유도하면, 추후 적정량을 배분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후 KB증권은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물량을 떠넘겼고, 상장 이후 주가까지 떨어져 피해를 입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투자업계에서는 기관투자자의 허수성 청약과 과당경쟁이 수요예측의 가격 발견기능을 저해하여 공모주 시장의 왜곡을 유발,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번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에 대해 허수성 청약을 예방함으로써 건강한 투자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입장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낮아져 IPO 시장의 열기가 식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입장이 공존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