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이 화제가 됐다. 미국 스타트업과 테크 기업을 지원하면서 함께 성장해 온 SVB의 파산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있지만 그중 은행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리스크 대응이나 조직관리에 소홀했다는 점이 주요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SVB 파산 당시, 위험성을 포착할 최고위험관리책임자(CRO)의 부재와 함께 8500명의 직원 대다수가 재택근무 중이었다는 점을 꼬집었다. 니콜라스 블룸 스탠퍼드 교수는 "회사의 리스크를 화상 회의만으로 대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SVB의 한 전직 임원은 "월스트리트처럼 거칠고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기보다는 실리콘밸리 IT 회사나 대학 캠퍼스에서 일하는 느낌이었다"라고 입장을 내비쳤다.

재택근무를 채택했던 기업들의 변화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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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마저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면서 국내 기업들은 팬데믹 시기에 도입했던 재택근무를 경기 침체와 비효율성 등의 이유로 폐지하거나 다양한 근무 형태로 전환하고 있다.

국산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은 지난달 말 사내 공지를 통해 이달 2일부터 재택근무제에서 전면 출근제로 기본 방침을 전환한다고 알렸다. 재택근무를 폐지한 것은 아니지만, 재택근무를 하려면 부서장의 결재가 필요해졌다.

재택근무를 장려하던 IT기업들도 사무실이나 공유오피스 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게임업계는 재택근무를 축소하거나 전면 폐지했으며, SK텔레콤도 지난달부터 재택근무 횟수를 주 1회로 축소했다. 카카오는 이달부터 사무실 출근을 우선으로 하는 '오피스 퍼스트 근무제'로 바꿨다.

숙박 플랫폼 야놀자는 현재 시행 중인 상시원격근무를 종료하고 4월부터 하이브리드 유연근무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야놀자의 하이브리드 유연근무제는 4·5월에는 주 2회 출근, 6월부터는 주 3회 출근하는 방식으로 원격근무와 출근을 병행하는 방식의 근무제다. 네이버는 주 5일 내내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원격근무와 주 3일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는 오피스 근무 방식 중 한 가지를 6개월 단위로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근무 제도 변화에 대한 '기업 VS 직원' 입장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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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사무실 근무'를 경기 불황과 생산성 저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고 있다. 경기가 침체된 만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밀도 있는 업무 환경이 요구되고 있으며, 재택근무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소통의 어려움과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데 있어 사무실 출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업들의 이러한 결정에 직원들은 "재택근무 축소는 곧 복지 축소다"라며 노조를 형성하는 등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실제로 야놀자는 채용 시 상시 원격근무 조건을 내세워 해당 조건을 보고 입사하거나 이직한 직원들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카카오 노조도 "근무 제도를 바꾸려면 직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 전문가는 재택근무도 장점이 있지만 업무 특성상 사무실 출근이 효율적인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한 가지 근무 형태만 고수하는 것 보다는 시행 전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선진국의 경우 업종과 직무에 따라 유연한 근무를 제도화하는 기업이 많다"라고 덧붙였다.

사라진 '재택근무' 복지, 워케이션 적극 도입하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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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를 없애는 대신 일부 기업들은 보상책의 일환으로 일(work)과 휴식(vacation)을 합친 워케이션 제도를 확대하고 있다. 회사가 비용을 지원하는 호텔·리조트 등에서 머물며 낮에는 업무 공간에서 업무를 하고, 업무 시간이 종료되면 현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제도로 월차나 연차가 아닌 출근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 1월 강원도 강릉 안목해변 인근과 경기 이천시 곤지암리조트에서 일주일 간 머물며 일할 수 있는 워케이션 제도를 도입했다. 또 주변 환경 등의 이유로 재택근무가 어려운 직원, 장거리 통근이 힘든 직원 등을 위해 서울 마곡, 경기 판교 등 거점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SK텔레콤도 서울 워커힐 호텔 등 워케이션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재택근무는 종료했지만 워케이션 제도를 적극 확대하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백화점은 올해 초 재택근무를 없애는 대신 작년 6월부터 선임급 직원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던 워케이션 제도를 올해 두 배가량 늘릴 방침이다. 일주일 간 제주도나 강릉에서 체류하는 비용을 지원하며 창의적인 업무 환경을 제공해 직원 복지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또 내달부터 사무실 출근제로 전환하는 롯데멤버스도 제주도에서 진행하던 워케이션 제도는 그대로 운영할 계획이다. 롯데멤버스 관계자는 2년간 운영한 결과 업무에 차질이 없었고 프로그램 만족도와 추천 비율이 98%에 달할 정도로 직원 호응도가 높아 복지 차원에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도에서 워케이션용 거점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는 CJ ENM 관계자는 "참가 직원들의 피드백을 보면 평소 접점이 없었던 다양한 부서 직원들과 네트워크가 생겨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는 반응이 많았다"라며 워케이션 거점 오피스의 장점을 언급했다.

워케이션의 긍정효과 '지역 활성화·생활 인구 늘리기' 기대하는 지자체들

국내 지자체들은 재택근무가 종료돼도 워케이션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워케이션 지원 프로그램을 늘리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에 유입 인구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긍정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관광재단은 워케이션 특화상품 기획전을 3개 여행사, 5개 플랫폼에서 순차적으로 출시한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투어비스와 프리비아를 시작으로 21일 웹투어, 28일 여기어때 및 국내 유수 기업 복지몰에서 올해 6월 말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강원관광재단은 워케이션 첫 기획전을 출시한 2021년 1만 9727박, 2022년 2만 2801박을 판매하기도 했다.

전라북도 역시 '전북형 워케이션'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 극복에 나선다고 밝혔다. 지난 1월 30일에 개소한 전라북도관광기업센터에 공유사무실(약 60평 규모)을 마련해 관광객들이 갑작스럽게 업무가 생길 경우를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또 3월 내에 전주 경기전 인근에 여행자 라운지를, 8월에는 한옥마을 입구 글로벌 웰컴센터를 개소할 예정이다. 더불어 전주의 대표 관광지인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공유사무실 20개, 숙박시설 50개, 카페 100개를 확보해 홍보할 예정이다.

부산시도 지난해 7월 동구에 부산 워케이션 거점센터를 설치했으며, 지난달 해운대구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가 '해운대형 워케이션'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해운대구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업해 바닷가의 특색을 살린 공유 오피스를 마련, 해양자원을 기반으로 한 해양휴양형 상품 개발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도는 워케이션의 성지라고 불릴 만큼 이미 맞춤 공유 오피스가 많지만 워케이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휴공간을 가진 마을에 생활인구 유치를 위한 공간 설치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번 사업은 다양한 목적을 가진 지역체류객(생활인구)을 마을에서 유치할 수 있도록 공간 리모델링 비용과 운영 기술을 지원하는 것으로, 선정된 마을에는 공간 공사비로 최대 5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고성대 제주도 도시균형추진단장은 "제주도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닌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며 "20~30대의 제주도 재방문율이 높은 만큼 생활인구 유치 인프라를 구축해 젊은 세대와 기업 유치를 확대하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워케이션 유치가 지방 소멸 문제를 해소할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지자체의 주도로만 진행되는 사업이 아닌 숙박업소 등 지역 내 다양한 주체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단순히 휴양지에서 일을 한다는 지엽적인 개념보다 관광 소비 등 더 넓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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