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주요 항로인 홍해 지역에서의 정세 불안정성이 세계 무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말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홍해 사태'가 미국의 맞대응으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해 국내외 정부는 발 빠른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홍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에는 해상운임 및 유가 상승 등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세계은행은 홍해 사태와 관련해 "세계 무역을 중단시켜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세계경제에 파괴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번 사태의 중심지인 홍해는 세계 컨테이너의 30%, 에너지의 15% 정도가 움직이는 세계 주요 교역로 중 하나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홍해를 통한 러시아의 원유 교역량(배럴/일)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 12만에 불과했으나, 최근 6개월 170만으로 무려 1,317% 증가했다. 이는 러시아가 서방에 대한 제재로 유럽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을 걸어 잠그고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로의 수출을 확대한 결과다.
같은 기간 유럽도 러시아에 의존하던 원유 수입을 중동으로 전환하면서 홍해를 통해 중동과 유럽 사이 오가는 원유 교역량이 87만에서 130만으로 약 49% 늘었다. 이러한 상황은 홍해의 교역 중요성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홍해사태
홍해 사태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후티 반군과 미국 주도 서방 연합군의 무력 충돌 사건이다. 이는 세계 주요 물류 유통망인 홍해의 안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인 지난해 10월 후티 반군은 하마스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홍해를 통해 이스라엘로 가는 모든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후티 반군은 대함 탄도미사일, 자폭 드론 등을 이용해 머스크 해운 소속 항저우호 등 홍해를 지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홍해 무역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예멘 본토를 대대적으로 공습하기 시작했다. 이에 후티 반군은 연합군의 공격을 규탄하며 이스라엘과 연계된 선박에 대한 공격을 지속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과 영국에도 복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현재까지도 후티 반군과 미국·영국 연합군 사이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후티 반군은 연합군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홍해를 지나는 선박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지난 16일 미군은 3번째 공습에 나섰다. 해당 공습에서 미군은 후티 반군의 대함 순항미사일 4기를 파괴한 것으로 전해졌다.
#후티
후티는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남부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으로, 이슬람의 소수 종파인 자이드파(시아파) 율법의 정치적 강림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조직은 1994년 '모하메드 알후티'와 그의 형제 '후세인 알후티'에 의해 창설됐으며, 안사르알라(안사룰라) 또는 후시라고도 불린다.
지난 2004년 후티는 예멘 정부가 자이드파 종교 지도자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후세인 바드레딘 알후티'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를 사살하자 무장단체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예멘 정부와 내전을 벌이며 반정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후티는 자신들을 정규군 또는 예멘 공화국군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 세계적으로는 이슬람 문화권의 반동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은 유일하게 후티를 예멘의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면서 정보와 무기 등을 지원하고 있다.
[홍해사태 영향 ① : 해상운임 상승] 주요 선사들, 홍해 대신 희망봉 우회 루트 선택했다... 해상운임 2배 급증
홍해 사태는 국제 물류에 차질을 일으키면서 해상운임 상승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후티 반군의 위협으로 세계적인 해운사들이 홍해 항행을 중단하면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선박 항로인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HMM을 비롯한 머스크, 하팍로이드, CMA CGM 그룹, 에버그린 등 세계 주요 컨테이너 선사와 유조선 선사(프론트라인·유로나브), 석유 및 가스 회사(BP·이퀴로드) 등은 홍해(수에즈 운하)를 피해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로를 선택하고 있다. 이는 결국 운항 거리와 시간이 늘어나면서 해상운임 상승과도 직결되고 있다.
최근 하팍로이드는 "선박의 방향을 홍해에서 케이프 쪽으로 계속 돌릴 계획"이라며 "홍해를 통과하는 것은 여전히 위험하다"라고 전했다.

18일 한국관세물류협회에 따르면 글로벌 해상운임 기준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 12일 기준 2206.03을 기록, 지난해 최저치인 9월(886.85) 대비 150% 가까이 상승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혼란을 제외하고는 최고 수준이며, 2022년 9월 23일 이후 1년 4개월여만의 2,000선 돌파다.
예컨대 컨테이너를 상하이에서 유럽 최대 무역항 로테르담으로 옮기는 비용(40피트 컨테이너 기준)은 지난해 12월 23일 1,667달러에서 1월 5일 3,577달러로 두 배 증가했으며, 부산에서 유럽까지의 운송 비용은 1,199달러('23.11.17.) → 1,305달러('23.12.1.) →1,606달러('23.12.15.) → 3,732달러('24.1.5)로 급증했다.
영국의 해양 컨설팅업체 드류리(Drewry)의 수석 연구원 사이먼 히니는 "코로나19 제한 조치가 끝난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던 운임비가 홍해 사태로 인해 반전됐다"라며 "화물 소유자에게는 시간과 비용이 추가되고 혼란이 가중됐다"라고 전했다.
덧붙여 그는 "지연된 많은 서비스가 도착하면 유럽 항구의 혼란도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백악관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국제 상업 운송에 대한 27건의 공격으로 50개 이상의 국가가 피해를 입었으며, 2,000척 이상의 선박이 홍해를 피하기 위해 수천 마일을 우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글로벌 해운 시장조사기관 클락슨(Clarksons)은 최근 "희망봉을 우회하는 컨테이너 선박 수(20피트 컨테이너 기준)가 지난해 12월 21일 155척에서 1월 9일 364척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라고 밝혔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SCFI는 상하이 해운거래소(SSE)가 중국 상하이 수출 컨테이너 운송시장 15개 항로의 스팟 운임을 반영해 집계하는 지수다. 이는 중국 상하이에서 유럽과 미국 서해안을 오가는 해상운송 운임 수준을 보여주는 글로벌 물류 지표로 사용된다.
◆해상운임 상승, 국내 해운주 주가 급등

해상운임의 상승은 국내 해운 산업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해상운임과 함께 물류비가 높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되면서 해운주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대한해운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7.82% 상승한 2,8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 중 한때 상한가(3,100원)까지 오르며 52주 신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같은 날 흥아해운도 장중 25% 이상 급등하며 신고가를 경신했으나, 장 후반 상승 폭이 줄어들며 5.32% 오른 4,455원에 마감했다. 이 밖에 STX그린로지스(5.27%), 팬오션(3.13%), 태웅로직스(1.37%) 등도 줄줄이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흥아해운과 대한해운은 홍해 사태의 영향으로 올해 매수세가 집중되면서 높은 주가 상승률을 달성했다. 흥아해운은 연초(1월 2일) 대비 70.2%, 대한해운은 31.9% 올랐다.
[홍해사태 영향 ② : 유가 상승] 홍해 지정학적 긴장, 유가 상승 우려로 연결… 브렌트유 올해 최고가 기록
홍해의 지정학적 긴장은 에너지 시장에도 이어지고 있다. 세계 에너지의 약 15%가 움직이는 중요 교역로인 홍해의 불안정성이 커짐에 따라 유가 상승이 우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회 항로 선택으로 인한 유조선의 항해 기간 증가와 운항 횟수 감소 등은 원유 소비 증가, 실질 원유 선복량 감소를 유발해 유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후티 공습으로 긴장감이 고조된 지난 12일(이하 현지시간) 유럽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국제유가 지표인 브렌트유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약 1.1% 상승한 배럴당 78.29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들어 최고가로, 장 중 한때 4% 넘게 폭등하며 8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같은 날 미국유가 기준물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장중 4.5% 가까이 상승한 75.25달러까지 올랐으나, 장 후반 상승 폭이 줄어들면서 0.92% 오른 72.68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다만, 현재 유가는 달러 강세와 미국 원유 공급량 상승 등 다른 요인들과 상쇄되며 상대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무역업체 군보르그룹(Gunvor Group)의 CEO 토브욘 톤퀴비스트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유가는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홍해의 혼란은 석유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향후 유가 전망 - 최악의 시나리오 땐 배럴당 110달러까지 상승

문제는 홍해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다. 홍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속되면 중동산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의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유가 등 에너지 가격의 급등을 초래할 수 있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장기화될 시 이는 에너지 가격 강세를 유발할 수 있다"라고 전망하며 "주요 선박들의 운항 거리 증가가 선복량 감소를 유발해 에너지 공급에 차질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에너지 소비도 증가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윤 연구원은 "2021년 수에즈 운하에서 발생한 에버기븐호의 좌초 사건은 해결에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공급망 회복까지는 더 긴 시간이 소요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업계 전문가들은 유가의 상승세 지속 여부는 향후 중동사태 관련 주요국(미국, 이란 등)의 대응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 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겨지는 '이란 참전'으로 전쟁이 확대될 경우, 국제 유가는 배럴당 11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냉정하게 봤을 때 홍해 사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여파를 가르는 요소는 중동 확전에 따른 국제유가의 향방"이라며 "미국과 이란 간 전면전으로 번져 장기화하지 않을 경우 국제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해사태 영향 ③ : 인플레이션 상승과 세계경제 둔화] 세계은행 "홍해 분쟁 장기화, 세계 경제에 파괴적 영향 유발 가능성" 경고

세계은행은 홍해 분쟁의 장기화와 중동 전역의 긴장 상태가 세계 경제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인플레이션을 다시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놨다.
18일 영국 언론매체 가디언에 따르면 세계은행은 최근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함께 중동 위기가 세계 경제에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라며 "분쟁 확대는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러한 상황은 글로벌 활동과 인플레이션에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발표했다.
또한 세계은행은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에너지 공급이 중단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할 경우, 이는 결국 세계 경제 성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 상승이 다른 원자재 가격에도 심각한 파급효과를 가져오면서 지정학적·경제적 불확실성을 높이고, 투자를 위축시켜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 세계은행은 실질 금리와 관련된 금융 스트레스,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예상보다 약한 중국의 성장, 추가 무역 분열 및 기후 변화 관련 재난 등도 세계 경제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홍해 사태 - 국내 정부 대응] 정부, 임시선박 투입 및 에너지 비축현황 점검 나서

최근 홍해 해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대됨에 따라 국내 정부도 수출물류 대란 방지 및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기획재정부는 수출바우처 국제운송비 지원 한도를 상향하고, 적재 공간(선복) 부족 가능성에 대비해 유럽 노선에 임시선박을 신규 투입하기로 했다.
수출바우처는 해상운임 상승 추이에 따라 현재 2,000만 원 수준에서 단계별로 상향하기로 했으며, 임시선박은 1월 중순~2월 초 사이 북유럽(1만 1,000TEU급 컨테이너) 노선에 1척, 지중해 노선(4,000~6,000TEU급 컨테이너)에 3척을 임시 투입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유관기관(석유공사·가스공사), 국내 정유사(SK에너지·GS칼텍스·S-OIL·현대오일뱅크) 등 관련 업계와 긴급 상황점검 회의를 개최하고, 에너지 수급 안정화 대책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산업부는 수급 비상 상황에 대비해 국내 석유·가스 비축현황 점검 및 비상대응 매뉴얼을 점검하고, 향후 석유·가스의 수급 동향과 유가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또한 이전에 발생했던 중동 분쟁 사례를 분석해 주요국들의 대응에 따른 다양한 중동정세 시나리오도 준비하기로 했다.
최남호 산업부 2차관은 "중동은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2%를 공급하는 등 국내 에너지 안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큰 지역"이라며 "최근의 중동정세로 인해 국민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정부와 유관기관, 업계가 긴밀히 공조하며 총력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슈 +] 홍해 리스크에 자동차 업계도 휘청... 테슬라·볼보, EV 공장 가동 중단
최근 홍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도 타격이 확산되고 있다. 선박 운항 경로 변경에 따른 물류 차질로 자동차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자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생산 중단에 나서고 있다.

18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테슬라는 최근 부품 부족을 이유로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그룬하이데에 있는 전기차 생산 공장 가동을 오는 1월 29일부터 2월 11일까지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공장은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 Y를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테슬라는 성명을 통해 "홍해에서의 무력 충돌과 희망봉을 경유하는 유럽과 아시아 간 운송 경로의 변화가 그룬하이데 공장 생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며 "상당히 긴 운송 시간으로 인해 공급망에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볼보자동차도 기어박스 배송 지연으로 인해 벨기에 겐트 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볼보의 대주주인 중국 자동차 제조사 지리(Geely)는 "예멘 무장세력이 선박을 공격하고 있어 화주들이 더 길고 값비싼 경로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라며 "자사의 전기차 판매도 배송 지연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 밖에 타이어 제조업체 미쉐린도 최근 원자재 공급 지연으로 유럽 공장들의 간헐적 생산 중단에 돌입했으며, 향후 추가 가동 중단 가능성을 예고했다. 오는 20~21일에는 스페인 공장 가동을 중단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