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을 비롯한 미국·유럽의 에너지 정책이 각 정부의 성향에 맞게 방향성을 잡고 나아가고 있다. 주요국의 에너지 정책은 항상 논쟁이 있었지만, 현 시대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위주로 에너지 정책을 펼치던 독일을 필두로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탈원전을 벗어나 원전으로의 회귀를 선언했다. 반면, 한국은 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재생에너지 정책에 다시 힘을 주며 글로벌 트렌드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 믹스'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사이에 에너지 정책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올라간 배경에는 AI 투자 광풍이 자리하고 있다. AI 투자 광풍은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건설을 기본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에 상응한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의 에너지 생산 구조로는 대규모 전력의 감당하는데 한계가 있어 전력난이 불가피하다.
한계가 명확한 현 시대의 에너지 생산 구조
기존 에너지 생산 구조의 한계점은 명확하다. 풍력, 태양광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의 '수급 불안전성'이 대표적이다. 올해 1월 영국에서는 풍력 에너지 비중의 감소로 전력 도매가가 급등한 바 있으며, 태양광 비중이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해질녁 급격한 출력 저하로 에너지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벨기에는 폐쇄 예정이었던 원전을 2035년까지 연장하고 신규 원전 설치를 검토하기로 했으며, 체코 역시 두코바니 신규 원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원전)의 문제점
올해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 열풍이 이어지면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현재의 에너지 정책으로는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전력난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원전은 에너지원 중에서도 설치·공사기간이 길고,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원전'이라는 대안을 선택하더라도 물리적인 시간이라는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소형모듈원자로(SMR), 초소형모듈원자로(MMR)다. 하지만 이 역시도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인류가 만들 수 있는 에너지원 중에서 원자력 에너지의 가치가 가장 높다지만, 이 역시도 물리적인 시간을 극복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에너지 생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장
요즘 전력난 대안으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것은 '에너지 저장 장치'(ESS)다. 현 시점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보다 기존 에너지를 잘 활용하는 '에너지 보완'이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장도 점차 원전·가스·재생에너지의 믹스, 이를 떠받칠 ESS로 수렴하는 모양새다. ESS는 설치가 빠르고 즉각적인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블룸버그NEF(BNEF)는 2025년 전 세계 신규 ESS 설치가 92GW, 양수 발전을 제외하고는 247GWh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테슬라의 에너지 사업 분기 이익이 해마다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판매 둔화 속에서도 에너지 저장 사업이 실적 방어축 역할을 하면서 여전히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그동안 소외됐던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실적 개선 전망 △시장 유동성 회복에 따른 순환매 △ESS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 기대감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국내 배터리 업계는 2년간 이어진 2차전지 산업의 암흑기를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ESS를 꼽고, 관련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이 없어지면서 산업의 중심이 기존 전기차 배터리에서 ESS로 옮겨가고 있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를 통해 ESS용 배터리에 대한 양산을 계획하고 있으며, 삼성SDI는 LFP 배터리 라인 전환으로 ESS 생산능력(CAPA)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ESS 사업을 활성화려는 전략이다.
세계 에너지 정책이 재생에너지 단독에서 원전·가스, ESS를 결합한 복합 에너지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발전소 같은 생산설비는 건설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불확실하지만, ESS는 비교적 빠르고 유연하게 늘릴 수 있어서다. 또 AI·데이터센터 확장과 가격 변동성 확대는 ESS의 사업성·우선순위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더 많은 발전소를 짓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에너지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잘 연결할지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규제·기업의 변화를 면밀히 추적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