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버블' 붕괴? 2025년 AI 버블이 닷컴 버블과 다른 점

IT 닷컴 버블과 비교되는 AI 버블? 거품의 질이 다르다

2025-10-14     정신영 기자
출처 = Canva

미국 나스닥 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뜨거운 상승장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다시 시작된 미-중 관세 전쟁으로 미 증시는 큰 폭의 하락을 보였지만, 그동안의 AI 열풍으로 인한 빅테크 기업들의 상승폭을 감안하면 여전히 미 증시는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엔비디아를 비롯해 구글, 메타, 아마존, 오라클, AMD, 브로드컴 등 주요 기술주들의 상승이 시장을 이끌면서 글로벌 증시 전반이 'AI 투자 광풍'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달아오르고 있다.  

이 흐름은 미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 증시 역시 각자의 요인으로 상승세를 이어가며, 전 세계 자금이 쉼 없이 '기술주'로 향하고 있다. 상승 기조에도 불구하고 시장 상황은 여전히 불안하다. "지금의 상승세는 과열이 아니냐", "AI 버블이 닷컴 버블을 재현하는 것 아니냐"는 등의 'AI 버블'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면서다. 최근 금융시장 뉴스를 살펴보면 과거 닷컴 버블과 비교하며 경고성 분석을 내놓는 보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증시는 AI 광풍으로 인한 버블의 끝에 가까워졌을까?

이번 랠리는 단순히 몇몇 숫자로만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차이를 보여준다. 닷컴 버블 당시의 시장은 키만 크고 체력이 약했다면, 지금의 AI 시장은 근육(수익)이 잘 붙어 체력까지 겸비했다.

닷컴 버블의 정크 vs AI 버블의 체력

1999~2000년 나스닥 증시는 인터넷 성장 기대감이 넘쳐 나면서 지금처럼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였다. 다만, 관련 기업의 상당수가 적자 상태였다.

대표적으로 닷컴 버블 당시 Pets.com, Globix Corporation, Webvan, eToys 같은 기업들이 매출보다 비용이 큰 수익 구조를 지니고 있었고, '미래의 가능성'만으로 기업가치가 수십 배로 뛰었다. 결국 버블이 꺼지자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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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이번 AI 사이클은 수익성이 검증된 대형 기술주 중심의 집중형 랠리를 보이고 있으며, 대표 기업인 엔비디아는 올해 매출 1,100억 달러를 넘긴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평균 영업이익률도 50% 이상을 상회한다. 

메타 역시 AI 추천 시스템을 통한 광고 효율화로 영업이익률 30%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은 오라클과 AMD도 견고한 수익 구조를 갖추고 있다. 즉, 이번 상승은 '기대감'이 아닌 '실적'이 동반된 상승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차별화된다. 과거에는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실적이 이를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근거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다만 이 역시도 리스크는 내포하고 있다. S&P500 내 상위 10개 기업이 전체 시가총액의 33% 이상을 차지하고, 이익 기여도 또한 30%를 웃돌며 시장의 집중도가 극도로 높아졌다. 리서치 어필리에이츠(Research Affiliates)는 보고서에서 "AI 랠리는 닷컴 버블보다 상위 10개 종목에 더 집중된 형태"라고 평가했다. 다시 말해 시장의 키는 커졌지만, 체력이 특정 근육에만 몰린 불균형한 구조라는 의미다.

이번 버블은 퀄리티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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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의 메리 데일리 총재는 최근 인터뷰에서 "AI 버블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금융 시스템을 불안하게 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AI가 일자리를 줄이기보다는 오히려 기술 분야의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며, AI 투자가 단순한 투기가 아닌 생산적 투자로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AI 투자가 자산 가격만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고용과 생산성 개선을 통해 실물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의 기술 투자와 비교하면 시장의 '체력'과 '퀄리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골드만삭스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AI 관련 주식이 과열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등 이미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갖춘 대형 기업들이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현재의 AI 중심 랠리에 대해 "시장 집중도는 높지만 재무구조가 견고하고, AI 경쟁이 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 이른바 '서학개미'들에게도 잘 알려진 '팔란티어'(PLTR)다. AI 데이터 분석 전문 기업인 팔란티어는 과거 적자 기업으로 분류됐지만, 회사의 AI 플랫폼(AIP)에 대한 정부·국방·의료 등 공공 부문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영업이익과 현금흐름 모두 흑자로 전환했다.

최근 분기 실적에서도 고성장을 이어가며 시장의 기대를 상회했다. 현재 주가가 단기적으로는 수익성 대비 다소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는 '묻지마 투기'가 아닌 미래가치에 대한 프리미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팔란티어는 AI 기업 중에서도 'Rule of 40' 지표가 가장 높은 대표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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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le of 40은 고성장 기업의 건전성을 평가할 때 활용되는 지표로, 매출성장률(%)과 영업이익률(%)을 합한 값이다. 이 수치가 40 이상이면 성장성과 수익성의 균형이 우수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팔란티어는 2025년 2분기 기준 매출 성장률 48%, 영업이익률 46%를 기록해 Rule of 40 지표가 94에 달했다. 이는 이번 주식 랠리가 단순한 투기적 과열이 아닌 AI 산업의 성장성을 선반영한 결과이자, 실적 기반의 '퀄리티 버블'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도 '위험 관리'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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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의 품질이 좋아지면 비누 거품은 더 크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지금의 시장 역시 과거보다 '비누 거품의 질'이 훨씬 좋아졌다. 다만, 이번 광풍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버블에는 반드시 끝이 있지만 버블을 만드는 비누의 질이 좋아졌다면, 그 버블은 과거보다 더 크고 오래 유지될 수 있다.

현재 증시가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다수의 투자자들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증시를 보며 '이 강세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라는 내심의 불안감을 함께 안고 있다. 최근 다시 불거진 희토류 통제를 둘러싼 트럼프와 시진핑,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과거에도 있었던 이슈임에도 이번 미국 증시의 하락세가 더 매섭게 체감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현재 증시가 다소 높은 레벨에 머물고 있다는 잠재적 두려움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AI 광풍이 문제라서가 아니다. 광풍은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만, 증시 하락을 유발할 악재에는 시장이 과거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즉, AI 투자 열기로 글로벌 증시에 온기가 남아 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정책 리스크나 지정학적 변수는 단기간에 더 큰 하락 탄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금리 인하는 경기 둔화를 인정하는 강력한 신호이며,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파월 의장의 임기가 종료되는 내년 이후에는 트럼프가 더 과격한 정책을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과도한 우려로 시장을 회피할 시점은 아니다. 과거와는 '다른 버블의 시대'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지나친 낙관 대신 '위험 관리 의식' 정도는 유지하는 것이 지금 투자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