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앤피메디 칼럼] 임상시험 데이터의 글로벌 표준 언어 'CDISC'

2025-09-04     JNPMEDI 오경주
▲왼쪽부터 제이앤피메디 오경주 Senior Consultant, 제이앤피메디 윤기원 Consultant (사진 = 제이앤피메디)

CDISC 왜 필요할까? 해결책은 '표준화'

신약 개발의 핵심 단계인 임상시험 과정에서 데이터의 수집, 관리, 분석 방식은 제약회사나 임상시험 수탁기관(CRO)마다 각기 다르게 진행한다. 이로 인해 다양한 형식과 용어가 혼재되어 데이터의 호환성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비표준화는 규제기관에 데이터를 제출하고 심사받는 과정에서 복잡성을 키우며, 결과적으로 신약 개발 승인을 지연시키는 주된 원인이 된다. 마치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가 뒤섞여 통역 없이는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 같다. 이처럼 제각각인 데이터 형식을 '통역'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며, 이는 곧 신약 개발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CDISC의 등장과 역할

이러한 임상시험 데이터의 비표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 비영리 단체가 'CDISC'(Clinical Data Interchange Standards Consortium)다.

CDISC는 1997년 설립됐으며, 임상시험 데이터에 대한 글로벌 표준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CDISC의 표준을 적용하면 모든 임상시험 데이터가 동일한 형식과 구조를 가지게 되어, 서로 다른 기관에서 생성된 데이터라도 쉽게 통합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제각각인 언어를 하나의 공통 언어로 통일시켜주는 '글로벌 통역기'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데이터의 접근성, 상호운용성, 재사용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킨다.

CDISC의 역할은 특히 주요 국제 규제기관들이 데이터 표준화를 요구하면서 더욱 중요해졌다. 미국의 식품의약국(FDA), 일본의 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에 이어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에서도 CDISC 표준에 맞춰 데이터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매김했다.

이로 인해 CDISC 표준은 단순히 데이터를 정리하는 도구를 넘어, 국제적인 신약 허가를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 됐다. 데이터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고, 임상시험의 효율성을 높여 궁극적으로는 환자들에게 더 빠르게 신약을 제공하는 데 기여하는 중요한 해결책인 셈이다.

다양한 임상시험 데이터를 통일하는 CDISC의 역할

그렇다면 왜 이렇게 CDISC 표준을 따르도록 권고하는 것일까?

CDISC 표준이 강력히 권고되는 핵심 이유는,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다기관, 다직군, 다시스템이 '같은 것을 같은 방식으로 말하게'하기 위함이다. 임상시험은 복잡하고 다양한 주체가 협력하는 과정이므로 표준이 없으면 각 기관과 데이터 시스템이 제각각 다른 양식과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 결과 데이터를 통합하는 단계에서 끝없는 매핑과 정정, 재검증이 발생하며, 이는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크게 저해한다.

반면 CDISC 표준을 따르면 수집부터 분석, 제출까지 데이터의 구조와 의미가 일관되게 유지되므로 오류 가능성이 줄고, 재현성과 추적성이 높아진다. 규제기관 심사에서도 표준화된 형식은 검토 자동화와 비교 검토를 용이하게 해 의사결정을 빠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여러 개의 기관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할 때 하나의 기관에서는 '남/여'로 기록하고, 다른 기관은 'Male/Female' 또는 'M/F'와 같이 기록하며, 국문/영문, 약어를 섞어 쓰기도 한다. 또 어떤 기관은 검사 단위를 'mg/dL'로, 다른 기관은 'mmol/L'로 기록하기도 한다.

이렇듯 제각각의 데이터를 CDISC 표준을 통해 하나의 통일된 형식으로 정리함으로써, 데이터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오류를 처리할 수 있으며, 누가 보더라도 동일하게 해석되고, 사후 감사나 재분석 시에도 출처를 끝까지 추적할 수 있다.

CDISC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표준

CDISC에서는 여러 표준을 지원하고 있는데, SDTM(Study Data Tabulation Model)과 ADaM(Analysis Data Model)이 대표적이다.

'SDTM'은 수집되는 데이터(원본 데이터)를 표준화해 구조화하는 모델이다. SDTM을 따르면 데이터는 '제출 가능한 형태'의 데이터로 변환되며, 이를 통해 데이터 검증 규칙과 연동돼 제출 전 자동 점검이 가능하다. 'ADaM'은 표준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계분석에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는 표준이다. ADaM을 사용하면 통계 분석가들이 분석에 필요한 변수들을 쉽게 식별하고, 활용할 수 있어 분석의 재현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이 외에도 CDISC는 CRF 단계부터 SDTM과 호환되는 필드명 및 코딩을 권장해, 입력 순간부터 표준을 내재화하는 'CDASH'(Clinical Data Acquisition Standards Harmonization), 임상 전 단계 부터 동일한 표준을 이용해 관리할 수 있도록 비임상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우 사용하는 'SEND'(Standard for Exchange of Nonclinical Data) 등 다양한 표준을 마련했다.

이러한 포괄적인 표준들은 임상시험의 모든 과정에서 데이터의 일관성과 품질을 보장하며, 궁극적으로 규제기관의 심사를 자동화하고 의사결정을 가속화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즉, CDISC 표준은 임상시험 데이터의 '공통 언어'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CDISC 표준 사용의 이점

CDISC에서 지원하는 여러 표준을 이용해 임상시험 데이터를 표준화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여러 장점을 얻을 수 있다.

˙효율성 증대(Fostered efficiency): 데이터 수집, 관리, 분석 전반의 과정을 일관되게 정형화함으로써 중복 작업을 줄이고, 업무 흐름을 간소화하여 임상시험 진행 전반의 효율성을 높인다.

˙완전한 추적 가능성(Complete traceability): 데이터가 생성된 초기 단계부터 최종 분석 및 제출 단계까지의 흐름을 명확하게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어,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인다.

˙혁신 촉진(Enhanced innovation ): 표준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 및 혁신을 가속화한다.

˙예측 가능성 향상(Increased predictability): 표준화된 구조와 용어 체계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면, 데이터의 해석과 분석 결과에 대한 일관성이 높인다. 이는 임상시험 결과 예측과 의사결정의 신뢰성을 높인다.

˙데이터 품질 향상(Improved data quality): 구조화된 표준에 따라 데이터가 수집되므로, 오류율이 낮고 품질이 높다.

˙데이터 공유/호환성 용이(Facilitated data sharing): 제약사, CRO, 병원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관 등 다양한 기관 간 데이터 통합이 용이해진다.

˙프로세스 간소화(Streamlined processes) 및 비용 절감(Reduced costs): 데이터 정제 및 변환에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전반적인 진행 속도가 빨라져 비용 절감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CDISC 글로벌 트렌드에 따른 한국의 다음 스텝

현재 해외 규제기관들은 "CDISC 언어로 통일해서 말해라"와 같이 임상시험 데이터 제출 시 국제 임상시험 데이터 표준인 'CDISC' 적용을 의무화하거나 강력히 권고하는 추세다. 이는 단순한 서류 제출 요건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공통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데이터의 상호운용성과 정확성을 높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미 미국(FDA)은 2017년부터 CDISC 표준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일본(PMDA), 중국(NMPA) 등 아시아 주요국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유럽(EMA) 역시 허가신청의 상당수가 이미 CDISC 표준을 따르고 있으며, 글로벌 제약 시장에서 CDISC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한국 임상시험 시장의 위상과 CDISC의 도입

한국은 임상시험 분야에서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식약처 보도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은 전 세계 임상시험 수행 순위가 미국, 중국, 호주, 스페인, 독일에 이어 6위를 기록했고, 특히 서울은 전 세계 제약사 주도 임상시험이 수행되는 도시별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한국은 2020년부터 임상시험 수행 5위 안팎, 다국가 임상시험의 경우 11위 안팎의 높은 순위를 유지하며 활발한 국내외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한국이 글로벌 임상시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위상을 유지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표준인 CDISC 도입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는 국내 제약사들에게 CDISC는 단순한 규제 준수 차원을 넘어, 해외 규제 당국의 심사 기간을 단축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식약처의 변화와 앞으로의 발걸음

글로벌 트렌드에 따라 다국가 임상시험 및 글로벌 인허가를 위해서는 CDISC 표준을 따르는 것이 필수이므로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식약처도 그 필요성을 인지하고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21년 4월 품목허가 규정을 개정하면서 허가심사 시 임상시험과 비임상시험 기초자료를 CDISC에 표준에 따라 제출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으며, 2023년 CDISC 전문가 협의체를 구성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이는 CDISC를 국내 임상시험 데이터 관리 시스템에 통합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신호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명확하게 남아있다. 결국 CDISC는 단순한 규정집이 아니라, 임상시험 계획 단계부터 데이터 수집, 분석, 제출에 이르는 전 과정을 표준화해 데이터의 품질과 신뢰성을 극대화하는 숨은 가속장치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CDISC를 단순한 형식적 요건이 아닌, 글로벌 인허가 시장의 '입국 비자'이자 미래 임상시험 참여를 위한 '필수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제약업계, CRO 등 관련 주체들이 협력해 CDISC 전문가 양성, 교육 프로그램 확충, 그리고 표준 준수를 위한 기술적 인프라 구축 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CDISC를 효과적으로 적용한다면 한국은 글로벌 임상시험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신약 개발의 속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