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한국투자증권이 선보인 '진짜 IR', 무엇이 달랐나
한국투자증권 'VC 초청 유망 비상장 기업 투자설명회'
지난 8월 28일, 한국투자증권 주최로 열린 'VC 초청 유망 비상장 기업 투자설명회'는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통상적인 데모데이가 졸업 발표회나 쇼케이스 성격이 짙은 것과 달리, 이날 현장은 실제 투자를 집행할 '선수'들과 이미 시장에서 생존을 증명한 기업들이 서로의 가치를 탐색하는 진지한 협상의 장에 가까웠다.
준비된 기업들, 핵심만 논하다
행사에는 프리 A(Pre-A)부터 시리즈 B 단계에 이르는 약 30여 개 기업이 참여했다. 인공지능(AI), 바이오, 블록체인 등 소위 '핫'한 분야의 기업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이들의 발표는 미래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각 기업은 이미 확보한 투자 이력과 구체적인 사업 지표를 먼저 제시하며 발표의 신뢰도를 높였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의 사업 보호 전략이었다. 단순히 등록된 특허 건수를 자랑하는 수준을 넘어, 여러 내부 기술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엮어 경쟁사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기술적 해자(垓子)'를 구축하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이는 아이디어나 단일 기술의 독창성만으로는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 블록체인 기반 월렛 서비스 기업은 시장의 초기 과열기가 지난 후에도 어떻게 안정적인 트래픽과 수익 모델(BM)을 만들어가고 있는지 숫자로 증명했다. AI 영상 기술 기업 역시 단순히 기술 시연에 그치지 않고, 특정 산업 분야에 적용해 얻어낸 구체적인 성과와 고객사 피드백을 제시하며 기술의 사업적 가치를 입증했다. 아이디어를 파는 자리가 아닌, 사업을 증명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경험 많은 하우스 '한국투자증권'의 노련한 기획
행사의 성격은 주최 측인 한국투자증권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폭넓은 투자 스펙트럼을 가진 금융 투자사로서, 이미 투자한 포트폴리오 기업의 후속 투자 유치를 직접 챙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번 행사는 자사가 발굴하고 투자한 기업들의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의 일환으로 읽힌다.
참석한 벤처캐피탈(VC)들의 면면과 태도 역시 행사의 격을 높였다. 양적으로 많은 청중을 모으기보다, 실제 투자를 검토할 수 있는 소수의 전문 심사역들이 자리를 채웠다. 질문 역시 피상적인 수준을 넘어,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과 시장 경쟁 구도, 향후 자금 운용 계획 등 날카로운 지점을 파고들었다. 불필요한 수사나 과장 없이, 투자자와 창업가 간의 건조하지만 핵심적인 정보 교환이 오고 갔다.
대부분의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데모데이가 정해진 시간에 쫓겨 수박 겉핥기식으로 끝나거나, 창업가의 절박함만 부각되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번 한국투자증권의 투자설명회는 투자 유치라는 명확한 목적 아래, 잘 선별된 기업과 진지한 투자자들이 만나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효율적인 '비즈니스 미팅'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투자 시장이 얼어붙을수록, 이처럼 '진짜'를 가려내려는 노력은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