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 칼럼] '보안 소프트웨어' 보이지 않는 수호자, 그 침묵의 무게

편리함과 맞바꾼 안전의 책임은?

2025-08-28     서동욱 기자
사진 = 인베스트

어제 우연히 보안 관련 전시회 앞을 지나게 되었다. 화려한 부스와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문구들 사이로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낯설고도 익숙한 상념에 잠겼다. 아주 잠깐이지만 보안 회사에 몸담았던 기억이 스쳐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가 사용자의 편의와 경험을 극대화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반해, 보안 소프트웨어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보안 소프트웨어 세계는 조용히, 그리고 깊숙이 숨어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게 일하는 것이 미덕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 B2B, B2G 비즈니스가 대부분인 이 시장에서 고객들은 보안 솔루션을 도입하면서도 일상적인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불평을 쏟아내기 일쑤다. 기밀 문서를 외부로 전송할 때마다 뜨는 경고창, USB 포트를 차단하는 강제 정책 앞에서 사용자들은 매번 '확인'을 누르는 요식행위를 거쳐야 한다. 결국 생산성 저하를 이유로 수많은 예외 정책이 만들어지고, 관리자 권한은 점차 완화되는 '커스터마이징'이라는 이름의 타협이 이루어진다. 보안의 최전선이 그렇게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네트워크의 보이지 않는 통로에는 우리의 데이터를 노리는 수많은 위협, 소위 'Advanced Persistent Threats(APT)'라 불리는 지능형 지속 위협들이 잠행하고 있다. 이들은 한 번 침투하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동안 발각되지 않고 시스템 깊숙한 곳에 머무른다. 마치 유령처럼 조용히 드나들며 정보를 살피고, 가장 치명적인 순간을 위해 칼을 간다. 그러다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시스템의 작은 구멍, 제로데이(Zero-Day) 취약점이라도 발견되는 날에는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된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기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출처 = Canva

어느 날 갑자기, 대한민국 모든 금융 거래의 보증을 서던 회사의 시스템이 멈췄다고 상상해 보자. 보증이 필요한 모든 거래가 중단되고 사회는 대혼란에 빠진다. 이 글은 단순히 상상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근래 연이어 터져 나오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나, 신뢰하는 협력 업체를 통해 시스템 전체를 감염시키는 공급망 공격(Supply Chain Attack) 관련 뉴스들이 바로 이 생각의 출발점이다. 보안 솔루션을 공급한 회사는 발칵 뒤집힐 것이고, 담당자는 수천 마디의 비난을 감수하며 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아마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기술 분석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 고차원의 공격과 방어 사슬에서 진짜 희생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종종 그 책임을 특정 담당자나 기업에게 돌리려 하지만,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보안 불감증'이라는 이름의 문화, 그리고 '설마'라는 안일함이 만든 합작품이다.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열어둔 작은 예외가 거대한 재앙의 시발점이 되고, 비용 절감을 위해 미뤄둔 패치 하나가 전체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도미노의 첫 번째 조각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공격과 방어에 드는 비용, 사고 발생 시의 막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소비자는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며 그 안에 당연히 '안전'이라는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고 믿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켜져야 마땅하다.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 사업의 이유를 물을 때, 나는 종종 이 보안의 철학을 떠올린다. 당신의 사업은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객의 가장 기본적인 신뢰를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가. 화려한 기능과 사용자 경험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고객을 지키는 그 단단한 기반 없이는 모든 것이 사상누각일 뿐이다. 보안은 기술이기 이전에 약속이며, 가장 중요한 약속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