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 칼럼] '숫자'라는 벽 앞에 선 대표님에게

2025-07-10     서동욱 기자
출처 = Canva

오랜만에 아끼는 대표님 한 분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처음 만났던 날의 반짝이는 눈과 넘치던 열의, 사람을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분입니다. 그래서 꼭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입니다.

이 대표님의 아이템은 참으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디어와 제품은 단순 명쾌하지만 막상 구현하려면 바이오와 임상 중간 어디쯤에 있어 까다롭고, 시장은 거대해 보이지만 사용자가 드러내지 않아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기는 힘듭니다. 기술적 진입 장벽을 높여 제품을 만들었지만, 막상 시장에 내놓으면 정말 중요한 10%의 성분이 부족한 유사품이 금방 등장할 수 있는, 그런 복잡하고도 단순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님은 그동안 수많은 밤을 새워 제품을 완성했고, 이제 정말 '사업'을 해야 할 단계, 다시 말해 '돈'을 벌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정부 지원 사업은 받을 만큼 받았고, 시드 투자금도 거의 소진되어 갑니다. 후속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제 '숫자', 즉 매출이라는 증명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입니다.

예전에는 우리가 만나면 시장 분석, 특허 전략, 연구 개발과 같은 단어들로 대화의 대부분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케팅 채널, 고객 서비스(CS), 원가 구조와 같은 훨씬 더 현실적이고 당장의 생존과 직결된 단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과정이기에 오히려 제가 어떤 조언을 건네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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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히 대화의 주제가 바뀐 것을 넘어, 대표의 역할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는 신호입니다. 지금까지 연구실에 앉아 논문을 보고, 기술 문서를 작성하던 대표가 이제는 제품을 팔고, 고객을 응대하고, 돈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팀에는 이 일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설령 누군가 옆에서 조언을 해준다 한들, 직접 해보지 않은 일이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뿐입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 낯설고 어려운 일, 그리고 어쩌면 이 시기만 지나면 다시는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들이기에 더욱 막막할 것입니다. 마케팅, 영업, CS를 총괄할 전문가가 합류하기 전까지는 이 모든 일은 오롯이 대표의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의 스타트업은 필연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초기 투자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추가 지원 사업의 문턱은 아득히 높아 보입니다. 제품은 완성된 것 같은데, 어떤 채널을 통해 알려야 할지 막막합니다. 야심차게 스마트 스토어에 제품을 올려보지만, 어떻게 고객을 유입시켜야 할지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음은 타들어 갑니다. 우리 제품은 정말 좋은데, 알려야 팔릴 텐데… 시간은 흐르고 통장 잔고는 줄어들지만, 매출 그래프는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적처럼 첫 매출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예상치 못한 고객 문의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잠시 망설이다 대표가 직접 답변을 답니다. 좋은 후기든 나쁜 후기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합니다. 제품이 팔리면 팔릴수록 결제, 배송, 환불 등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터져 나옵니다. 매출을 일으키는 과정은 이토록 고되고 힘들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해내야 하는데…'라는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릅니다.

대표님과의 만남을 통해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스타트업이 처음으로 '숫자'를 만들어내야 하는 바로 그 고통스러운 순간, 그 곁을 지키고 함께 길을 찾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훌륭한 대표님들이 제품을 세상에 알리고, 첫 매출을 일으키고, 비즈니스를 성장시켜 나가는 그 절실한 순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겠습니다. 이제는 '스타트업을 위한 홍보, 마케팅, 영업'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막막함에 구체적인 채널과 방법, 숫자로 답을 찾아주는 멘토이자 든든한 동반자가 돼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