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판] 미래 반도체 패권 '유리기판'이 가른다… SKC·삼성전기·LG이노텍, 시장 주도권 쟁탈전 본격화
반도체 산업에 '꿈의 기판'으로 불리는 유리기판이 등장하면서 산업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기판, 실리콘 기판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 소재로, AI·고성능 컴퓨팅·데이터센터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를 재편할 주역으로 부상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 주도권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유리기판, 왜 주목받나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소재인 유리기판은 '인터포저'와 '패키지 서브스트레이트'에 유리 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인터포저는 반도체 기판(PCB)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를, 패키지 서브스트레이트는 반도체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메인 기판을 말한다.
이러한 유리기판은 최근 반도체가 소형화되고 고성능을 요구받으면서 기존 기판이 가진 물리적·전기적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5G, 자율주행 등 고성능·고집적 반도체가 핵심인 산업에서 유리기판의 필요성은 급격히 커지고 있는데, 현재 AI 반도체에 사용되는 유기 재료는 열에 약해 휨 현상과 반도체 칩의 대면적화로 여유공간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와 달리, 유리기판은 고열에 강해 휨 현상이 적고 표면이 매끄러워 미세회로 형성에 유리하다.
또한 유리기판을 적용하면 반도체 패키징 과정에서 중간 기판인 '실리콘 인터포저'를 생략할 수 있으며, 유전율이 낮아 전기적 특성이 좋다. PCB 대비 기판 두께를 25% 이상, 전력 소비는 30% 이상 줄일 수 있고, 데이터 처리 속도는 40% 이상 빠르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유리기판 시장이 연평균 3~7% 성장해 2030년 전후 100억~2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요 성장 동력으로는 첨단 디스플레이, 반도체, 전자기기, 태양광 등 다양한 산업에서의 수요 확대가 꼽힌다. 기업탐방 독립 리서치인 그로쓰리서치는 "유리기판은 AI 칩 패키징 공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그 중요성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라며 "글로벌 유리기판 시장은 2024년 2,300만 달러에서 2034년까지 42억 달러로 연 평균 약 5.9%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빅테크 '인텔·AMD·브로드컴·엔비디아' 유리기판 도입 가속
유리기판이 미래 반도체 산업의 핵심 소재로 급부상하면서 인텔, AMD, 브로드컴,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유리기판 개발 및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먼저, 인텔은 2014년부터 유리기판 연구를 시작해 10억 달러를 투자했다. 2023년 미국 애리조나주에 전용 R&D 라인을 구축했으며, 2026~2030년 사이에 차세대 데이터센터·AI용 패키지에 유리기판을 본격 적용할 계획이다. 인텔이 개발 중인 유리기판은 기존 유기기판 대비 평탄도, 열 안정성, 기계적 강도에서 탁월하며, 10배 이상의 인터커넥트 밀도와 초대형 패키지 구현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의 패키징 기술 책임자는 "유리기판은 차세대 반도체의 실현 가능하고 필수적인 다음 단계"라며 "인텔은 2030년까지 패키지에 1조 개의 트랜지스터를 탑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유리기판을 포함한 고급 패키징 분야의 지속적인 혁신은 이러한 목표 달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AMD는 2025~2026년 고성능 시스템인패키지(SiP)에 유리기판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센터용 EPYC 서버 프로세서(고성능 중앙처리장치), AI 가속기 등 다수의 칩렛이 집적되는 첨단 패키지의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성능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현재 AMD는 EPYC 서버 프로세서에 최대 13개의 칩렛을, AI 가속기에는 22개의 실리콘 조각을 사용하고 있다. AMD는 이미 유리기판 관련 핵심 특허를 확보하고, 글로벌 부품사와 공급망 구축도 진행 중이다.
브로드컴은 자사 반도체 칩에 유리기판 적용을 위한 성능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유리기판의 고온 내구성, 신호 전송 능력, 칩 소형화에 주목해 차세대 데이터센터용 칩에 유리기판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증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GPU의 발열 문제와 성능 개선을 위해 유리기판을 도입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식 발표는 없으나, 업계에 따르면 TSMC와 협력해 차세대 패키징 기술(FOPLP 등)에 유리기판 적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TSMC는 엔비디아의 요구에 맞춘 유리기판 기반 패키징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리기판 사업, 각축전 본격화 : SKC VS 삼성전기 VS LG이노텍
유리기판은 단순한 소재 교체를 넘어 반도체 생태계의 구조 변화를 예고한다. 특히 유리기판 상용화 성공 여부가 2030년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좌우할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국내 주요 기업들이 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C(앱솔릭스)
SKC는 자회사 앱솔릭스를 통해 미국 조지아주에 세계 최초로 유리기판 양산 공장을 완공하고, 올해 말부터 본격적인 시험 생산에 돌입한다. 앱솔릭스는 SKC(70.05%)와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AMAT(29.95%)가 공동 출자한 법인으로, 2024년 3월 1만 2,000㎡ 규모의 SVM(소규모 생산 시설) 1공장을 완공했다.
앱솔릭스는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고객사와 품질 검증을 진행하고 있으며, 인텔·엔비디아 등과 협력해 2공장 증설도 추진 중이다. 2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생산 능력이 7만 2,000㎡로 대폭 확대될 전망이며, AI·고성능 컴퓨팅, 포토닉스, 고주파 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내외 기업들과의 공급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또한 최근 SKC는 재무건전성 강화를 목적으로 3,100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는데, 금융투자업계(IB)는 앱솔릭스의 유리기판 사업 확대에 많은 비중이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SKC가 상장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앱솔릭스에 직접 투자할 경우 중복상장 이슈가 발생할 수 있어, FI들이 SKC를 통한 우회 투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에 발행된 EB는 30년 만기 영구채로, 교환대상은 SKC의 자사주 297만 5,304주(지분율 7.88%)다. 사모투자펀드 운용사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와 헬리오스프라이빗에쿼티가 투자자로 참여했다.
한편, 앱솔릭스는 미국 정부로부터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7,500만 달러(1단계 4,000만 달러 수령 완료)와 국가첨단패키징제조프로그램(NAPMP) 지원금 1억 달러를 확보했다. 이로써 단기 유동성에 숨통이 트였지만, 아직 별다른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있어 추가 자금 조달이 중요 과제로 남아있다.
◆삼성전기
삼성전기는 2027~2028년 본격 양산을 목표로, 유리 코어기판과 유리 인터포저를 모두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1월 CES 2024에서 유리기판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으며, 국내 최초로 세종사업장에 유리기판 파일럿 라인을 구축했다. 이르면 이달 안에 시제품 생산을 시작하고, 연내 미국 주요 빅테크 2~3곳에 AI 서버용 시제품을 공급할 계획이다.
현재 삼성전기는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국내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과의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수원 본사에서 첫 유리기판 기술교류회를 열어 27개 국내외 소부장 기업과 핵심 기술을 공유하고 공급망 강화를 위한 컨소시엄 발족을 논의했으며, 지난 1월에는 국내 대표 IT 화학재료 기업 솔브레인과 유리기판 제조에 필수적인 식각액 공동 연구에 착수했다. '식각액'은 유리 공정에서 미세한 구멍을 뚫거나 불순물을 제거하는 핵심 소재로, 솔브레인은 이미 삼성디스플레이 OLED 공정에 식각액을 공급한 경험이 있다. 이 밖에도 LPKF 등 다양한 소재·장비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유리기판 공급망을 넓히고 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유리기판은 AI와 서버 분야의 미래 핵심 소재"라며 "기존 유기(오거닉) 기판 양산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고객사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LG이노텍
LG이노텍은 지난해 열린 '국제PCB 및 반도체패키징산업전'(KPCA SHOW 2024)에서 유리기판 시제품과 관련 기술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LG이노텍은 유리기판이 기존 플라스틱 기판에 비해 표면 평탄도, 신호 특성, 미세화 및 대면적화 측면에서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특히 회사는 실리콘 인터포저 대체용이 아닌 PCB 코어에 유리를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며, 유리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신호를 전달하는 글라스관통전극(TGV) 등 핵심 공정 장비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올해 들어서는 유리기판 시생산 라인 구축에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일환으로 LG이노텍은 경상북도, 구미시와 2022년 1.4조 원 규모의 투자협약(MOU)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 4월 6,000억 원 규모의 추가 MOU를 체결했다. LG이노텍은 AI·서버용 FC-BGA(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 생산 라인을 갖추고 있는 구미공장을 유리기판 생산 거점으로 정했다. FC-BGA는 비메모리 반도체칩과 메인기판을 연결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고밀도 회로 기판으로,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적합하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는 "유리기판 생산 장비가 올해 10월 반입될 예정이며, 연말부터 자체 유리기판 개발을 본격화할 것"이라며 "빅테크 기업들과 협력하고 있으며 2027~2028년을 상용화 목표로 삼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슈+]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10년 만에 최대 매출... 중국 독주·한국 점유율 급감
올해 1분기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시장이 10년 만에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4년 하반기 가격 인상과 패널 제조업체들의 높은 가동률이 맞물리면서 이 같은 성과가 나왔다고 분석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유리기판 출하량이 전분기 대비 5%,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LCD 생산라인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의 TV 제품 출하를 늘린 영향이며, 중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으로 중국 내 TV 수요가 증가한 점도 주효하게 작용했다.
다만 2분기에는 매출이 전분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고, 3분기에는 소폭 감소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출하량이 저조한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2025년 2분기 출하량은 전분기와 비슷한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며, 3분기에는 전분기 대비 3%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로는 중국 패널 제조업체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 반면, 한국과 일본의 시장 영향력은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생산라인을 OLED로 전환하고 LCD 라인을 폐쇄하면서, 한국의 전체 디스플레이 생산 능력이 감소했다. 이에 2018년 초 17%에 달했던 국내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최근 약 6%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