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욱 칼럼]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 속 스타트업의 그림자 : 우리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나

데블스 플랜에 참가한 우리 스타트업들?

2025-05-22     서동욱 기자
출처 = 넷플릭스

최근 한 TV 프로그램이 연일 화제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변심과 배신, 때로는 양심과 합의, 그리고 또다시 반복되는 배신. 출연자들은 각자 다른 룰과 법칙을 가지고 게임에 임하고, 결국 그 모든 과정을 '적절히' 치루어 낸 최종 승자에게는 화려한 축하가 쏟아진다. '불법만 아니면 되는 양심적인 게임'이라는 포장 아래 말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문득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법대에 진학하는 이유는 법을 피하거나 이용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게임의 룰과 우리가 지켜야 하는 법은 모두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물론, 모든 약속이 항상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또한 이 게임판의 풍경이 우리 스타트업 생태계와 어딘지 모르게 닮아 있다는 씁쓸한 기분이 밀려왔다. 창업이라는 출발선은 같았지만, 저마다 다른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 '나에게만은 예외'라는 은밀한 기대감, 이미 정해진 듯한 승자의 존재,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때론 잔인하게 남의 편이 되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암묵적인 규칙들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길을 찾아 헤맨다.

그렇게 고군분투 끝에 마주하는 달콤한 성공의 순간, 그리고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마치 데블스 플랜의 최종 승자에게 주어지는 영광과도 닮아 있다. 

결국 스타트업이라는 링 안에서의 싸움은 승리라는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 안에서 적절한 타협과 치열한 경쟁, 때로는 불가피한 핑계와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용납되는 일종의 '게임판'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상적인 성장을 꿈꾸고 투명한 경영을 지향하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스타트업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 속에서 때로는 '악마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악마의 게임'의 참가자가 되어 보이지 않는 편을 만들고, 숨겨진 패를 쥐고, 포커페이스 뒤에 날카로운 송곳니를 숨겨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타트업 생태계라는 이름의 게임판 위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승리의 끝에서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곱씹을수록 씁쓸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